brunch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이유⓵_가족처럼 생각했다

by 신수현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고...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열고 손을 내어주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믿었던 시절의 습관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처음 직장에 발을 들였던 날을 떠올린다.

낯선 계단, 길가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잎사귀, 처음 만난 사람들의 얼굴...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 새로움은 나를 설레게도 하고 불안하게도 했다.


나는 무의식 중에 그곳을 또 하나의 집처럼 여겼다.

오래 다니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결국 가족처럼 될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아마 학교에서였을 것이다.

가족을 떠나 처음 만난 무리는 늘 학교였고, 나는 그곳에서 열두 해를 보냈다. 사계절을 함께 겪고, 수업시간마다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지냈다.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부모와 보낸 시간보다 길었다. 선생님은 부모의 다른 모습 같았고, 친구는 형제처럼 다가왔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그때부터 조금씩 확장되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에서도 그 연장선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상사는 부모처럼 이끌어주고, 동료는 형제처럼 옆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서로의 사정을 조금씩 나누고, 어느 날 문득 생일을 같이 보내는 가까운 사이가 된다면 충분히 가족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동료들은 친절했다. 업무를 알려주고 점심 메뉴를 함께 고민하며, 퇴근길에는 피곤한 얼굴에도 짧은 농담을 건넸다. 그 작은 순간들에서 나는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래서 조금 서둘러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가정사, 힘들었던 날들, 버거운 감정들.

그들은 그저 듣기만 했지만, 나는 듣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가까워졌다고 믿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신수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8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4화서툰 자는 또 다른 서툰 자를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