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없는 콜로세움

상처 입은 자의 자리

by 신수현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은 자리


세상은 종종 나에게 명확한 선악 구도를 요구한다. 하지만 삶의 현장, 특히 법과 감정이 뒤섞인 소송의 한복판에 서 보면 깨닫게 된다. 그곳엔 악마 같은 가해자도, 완벽한 성자도 없다. 오직 저마다의 입장에서 '내가 더 아프다'라고 외치는 피해자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의 이력서는 그 고통스러운 자기 계발의 기록이자, 부족함을 채우려 애쓴 흔적이다. 나는 단점을 고치려 전전긍긍하기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노력조차 사회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무력해질 때가 많았다.






학력을 지우고 목소리를 낮추고 살아야 했던 날들



때로는 너무 많이 배운 것이 독이 되기도 했다. 작은회사의 회계 담당자로 일하기 위해 고학력을 지워야 했던 순간들. 사회는 '똑똑한 사람'보다 '말 잘 듣는 사람'을 원했고, 나는 요구해야 할 상황에서도 침묵을 선택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부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은 나를 온순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지킬 수 있는 방패마저 빼앗아 버렸다.





가식의 기록, 거꾸로 솟구치는 피


정식 해고 통보도 없이 밀려나야 했던 일터, 사이코패스 같은 오너, 원칙 없이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세무법인들. 그 거친 파도를 넘다 결국 닿은 곳은 '부당해고구제신청'이라는 낯선 전장이었다. 나의 진정서에 맞서 상대방이 제출한 답변서들을 읽으며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상대방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관적인감정을 사실인 양 포장하고, 교묘한 거짓말을 덧붙여 가식의 성을 쌓아 올렸다. 일면식도 없는 직원이 내가 인사를 안 했다고 증언하고, 아파서 전화를 했음에도 무단결근으로 몰아세우는 거짓의 기록들. 그 객관적이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겁함을 숨기기 위해 나를 '문제 있는 노동자'로 낙인찍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콜로세움: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싸움


소송은 현대판 콜로세움이었다. 누군가 하나가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 싸움, 그리고 그 비극을 관조하며 즐기는 관객들. 나는 이 싸움의 한복판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상처 나고 뜯길지언정, 나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들이 쌓은 가식의 성벽을 하나하나 허물며 나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애썼다.


이 투쟁의 끝에서 내가 배운 것은 승리의 쾌감이 아니라, '나의 자리'를 확인하는 처절한 생존의 감각이었다.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형제들을 보며, 나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흉터가 될 수 있는지 다시금 체감한다. 화를 내뱉는 순간 그 불꽃은 나를 먼저 태우기에 사람들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이 곧 굴복은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배려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여전히 조심스럽고 어렵다.하지만 이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누군가에게 베풀었던 배려와 친절, 그리고 습관적인 칭찬은 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되어 나를 찌르는 칼날로 돌아왔다.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뱉었던 가벼운 칭찬들은 결국 나의 진심을 희석시켰을 뿐이다.


이제 나는 배려를 거두고, 칭찬을 멈춘다. "조금 더 공부할걸, 조금 더 배울걸" 하는 후회는 여전히 남지만, 가식으로 무장한 이들 사이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의 자리를 지켜낸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비록 가해자는 보이지 않고 피해자만 가득한 세상일지라도, 나는 짓밟힌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나의 냉정한 진실을 기록해 나갈 것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26화인간관계에서 실패한 이유②_나만의 언어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