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마치 보이지 않는 형벌처럼 느껴진다. 어떤 이에게는 시간이 무섭게 길게 느껴지고, 또 다른 이에게는 너무나도 짧게 스쳐 지나간다. 특히 마음의 짐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흐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나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나 지워지지 않는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것은, 시간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덮어둘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깊이 가라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다시 떠오를 뿐이다.
기억 속에 묻어둔 일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생생하다. 우리는 그것을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그 기억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난다. 특정한 장소나 향기, 음악이 과거의 시간을 불러오고, 그 순간 우리는 다시 그때의 감정 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처음으로 시간이 형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은 가까운 친구와의 이별이었다. 우리는 가족과의 문제를 나누며 서로의 감정을 해소했지만, 어느 순간 그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용기 내어 전화를 걸었지만, '오빠 전화 못 받아요'라는 차가운 목소리만이 돌아왔다. 나는 내 직감이 틀리기를 바랐지만, 나는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 내 나이 27살에.... 나는 아픔을 잊기 위해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야간대학에 입학해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되었고, 후회는 더욱 선명해졌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잊고 싶은 기억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쇠퇴하지 않는다. 만약 죽음이 예정되어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후회는 그와의 마지막 장소와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만약 그것이 마지막이었다면, 나는 시간을 더 존중하고 소중히 여겼을 것이다. 후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갔다. 시간이 약이라면, 왜 나는 점점 더 아파지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항상 상처를 더 깊게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야 만 깨닫게 되는 것들도 있다. 그 친구와의 이별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시간이 우리에게 남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길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또한, 과거에 머물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결국, 시간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장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한다. 과거를 붙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갈 것인가. 물론 과거를 잊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마주 하느냐이다. 시간을 형벌로 받아들이고 과거에 얽매여 살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기회로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 나는 더 이상 시간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어떤 기억을 남길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시간을 형벌로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과거에 머무르는 대신, 오늘을 살아가기로 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지금을 돌아볼 때, 후회 대신 따뜻한 기억이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