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따뜻한 국물 속에 떡과 함께 둥둥 떠다니는 속이 보이는 하얀 만두, 고소한 기름에 지글지글 구워진 바삭한 겉면이 일품인 만두, 한입 베어 물면 촉촉한 육즙과 담백한 채소의 조화가 입안 가득 퍼지는 만두, 만두는 언제 먹어도 좋지만, 특히 겨울에 더욱 깊은 맛을 자아내는 음식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단순한 맛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한입의 연대'가 숨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겨울이면 항상 만두를 빚었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인데, 여름에도 만두를 빚어 먹었다. 겨울에는 김장 김치와 묵은지를 넣어서 만들지만, 여름에는 김장 김치보다 호박을 넣어 만든다. 겨울 만두는 맵고 칼칼하지만, 여름 만두는 시원하고 담백하다. 강원도에선 호박이 들어간 만두를 ‘호박 편수’라고 불렀다.
겨울이 되면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삼대가 어우러져 반죽을 치대고 속을 만들며 정성껏 만두를 빚었다. 반죽을 뜯는 순간, 마치 새벽에 내리는 눈가루 처럼, 부드러운 밀가루가 공중에 흩날리는 것이 눈과 비슷했다. 우리 가족은 7형제의 대가족으로, 음력 1월 3일은 할머니의 생신이고, 명절준비와 할머니의 생신상 준비까지 하면 밀가루 10kg이 넘게 만들어진다. 그 흰 가루가 물과 만나 점차 하나로 뭉쳐지는 과정이 신기하게 보였다. 물이 조금 섞이면 반죽이 거칠지만, 적당한 물을 섞어 계속 주무르다 보면 부드러워지는 모습이, 사람 관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사람도 사랑으로 만져주고 지켜주면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만두속을 만드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겨울 땅속에서 추위를 버텨낸 배추는 소금에 눌려 겨울잠을 자다가 만두 속에서 다시 깨어난다. 푸른 비단처럼 얇은 부추, 오랜 시간 눌려 있던 배추의 숨결, 그리고 부드러운 두부. 두부는 차가운 물에 담가두면 부드럽게 떠오르지만, 온몸의 수분을 태우면 단단한 벽돌이 된다.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지만, 소금과 간장만으로 허기를 채울수 있고, 모든 재료를 감싸 안아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어머니는 두부가 만두소의 '기본'이라며 꼭 넣었고, 나는 그 벽돌 같은 두부가 신기해서 괜히 한 조각씩 떼어먹곤 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붉은빛의 고기 한 점. 어릴 적에는 이걸 꼭 넣어야 진짜 만두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기가 없을 땐 버섯을 더 넣어 감칠맛을 냈고, 그 역시 부족함 없이 맛있었다. 없는 자에겐 담백함을 주고, 있는 자에겐 또 다른 풍미를 더해주는 것. 만두소는 늘 그렇게 조화를 이루며 완성되었다. 없는자에게 한움큼의 다진 고기로도 배를 부르게 할수 있는 마법이다.
그러나 만두의 진짜 의미는, 그 모든 재료를 하나로 묶는 '만두피'에 있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만두피는 속을 감싸며 언젠가 찢겨 나갈 운명을 받아들인다. 마치 만두피가 아버지(가장) 같다고 생각한다. 여려 보이지만 많은 자녀를 감싸야 했고, 마지막에는 터지고 흩어질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두피는 물에 던져지기도 하고, 기름에 튀겨지기도 하며, 뜨거운 김에 쪄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속을 품어 보호한다. 그리고 결국 한입에 사라져도,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하나의 맛을 이루는 과정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 만든 만두를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나는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본다. 색깔도 다르고, 맛도 다르고, 식감도 다른,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채소처럼, 우리의 가족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함께 있을 때 가장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다. 때론 갈등이 생기고 서로의 차이가 도드라질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로 묶이며 같은 숨결을 나누는 가족이다.
이제는 혼자 만두를 빚는 일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반죽을 치대며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떤 관계를 빚어가고 있을까? 나에게 물이 되어 나를 단단하게 해주는 존재가 누구일까? 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가고 있을까? 만두를 빚으며 배우는 것은 단순한 요리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한 알 한 알 만두를 빚는다. 부드러운 반죽 속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한입의 연대를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