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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가족모임은 가정에서

가족이 직원으로 일할 때 생기는 문제

by 신수현

세무업무는 전산을 다루는 일이 많다. 단순히 키보드만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입력을 찾고 수정하며, 그 의미까지 파악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가족이 회사에 들어오면, 몇 번 전산을 만져봤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쉽게 여긴다. 이로 인해 오히려 다른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전산이 꼬여 처음부터 다시 입력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1. 가족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 성남의 한 세무사무소


성남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세무사 옆에는 사모님이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입사할 의향이 없었기에 편하게 면접을 봤다. 그런데 사모님은 자신이 가끔 나와 직원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도움이었을까? 단순 전산 입력을 넘어서 세무회계는 수많은 논리와 판단이 필요한 분야다. 잘못된 입력은 전체 데이터를 다시 해야 할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오히려 조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2. 역할보다 관계가 우선된 조직 – 간호조무사 출신 사모님


분당에 위치한 한 사무소는 인테리어도 좋고 규모도 컸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실질적으로 실장 역할을 하고 있던 사모님은 간호조무사 출신이었다. 컴퓨터 사용에도 익숙하지 않았고, 결혼 후 오랜 시간 가정을 돌보다 복귀한 상태였다. 문제는, 경정청구나 반기별 부가세 신고 등 복잡한 업무를 맡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처까지 맡으며 나에게는 주말 근무를 요구하고 연락을 끊는 등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였다. 게다가 본인때문에 토요일 나와 점심먹고 저녁을 커피로 떼웠는데, 다른 직원이 11시 넘어 출근했다며 점심먹으려고 나온것, 그리고 늦은 오후에 먹은 커피를 퇴근하면서 사먹은 커피라고 우기는 모습은 성실한 직원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다.


3. 경력을 무시한 지시형 운영 – 국세청 출신 부부


국세청 출신 부부가 운영하는 세무사무소에서는, 한쪽이 세무사로, 다른 한쪽은 살림만 하다 일을 시작한 경우였다. 경력자는 신입처럼 지시만 받고, 세세한 업무를 위임받지 못했다. 거래처 고지서를 잘못 전달받아 실수를 했음에도 그 책임이 나에게 전가되었다. 출퇴근 시간도 왕복 세 시간이 넘었지만, 성실신고까지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한 달간 버텼다. 정규직 전환 후에도 일은 전보다 더 많아졌고, 결국 한 달 만에 퇴사했다. 인간적인 신뢰보다 업무 체계가 우선돼야 했던 곳이었다.


4. 동생이 아닌 척, 그러나 ‘낙하산’ – 화성의 세무법인


화성에 있는 세무법인의 세무사는 여자였고, 골프를 즐겼으며 실무는 취약했지만 거래처를 많이 확보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슷한 외모의 여직원이 들어왔다. “동생인가요?”란 질문에 “그냥 동네 친구”라고 했지만, 주민번호 뒷자리까지 거의 같은 그녀는 분명 가족이었다. 이곳의 문제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실무 없이 관리만 하거나, 감정적으로 조직을 흔드는 리더십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직원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며, 조직 내 관계 형성이 어렵다.


가족은 조직이 아니다


가족이 회사에 들어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이 일반 직원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지 않으면 조직은 금세 기울기 시작한다. 직원들은 공정한 절차로 들어온 것이 아닌 ‘특혜’로 들어온 사람을 낙하산이라 부르며 경계한다. 가족이라면 적어도 일반 직원보다 더 책임감 있고 모범이 되어야 하며, 가정의 일은 회사로, 회사의 일은 가정으로 가져와선 안 된다.


세무사님, 누구의 편이십니까?


겉으로는 세무사님, 사모님이라고 존중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선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가족 간의 대화가 존재한다면 결국 세무사는 누구의 편을 들게 될까? 이런 구조 속에서는 직원들이 오래 남기 어렵고, 조직의 전문성과 공정성은 흔들린다. 가족이라도 실력과 태도, 책임감이 조직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일터는 결국 가족기업이 아닌 가족의 ‘놀이터’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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