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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12화
'성장'은 '버티기'가 아니다.
에너지가 방전될 때 떠나라
by
신수현
Apr 30. 2025
고3 가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직을 위해 잠시동안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나는 쉼 없이 일을 하며 달려왔다.
결혼하면서, 임신을 하면서, 휴직을 하기도 하지만, 난 이런 것이 없었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 쏟았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질문을 받는다.
"왜 이렇게 많은 회사를 옮겼나요?"
30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회사를 거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람들은 '
옮긴 횟수
'에만 집중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곤 한다.
직원이 자주 바뀌어 한 달에도 몇 번씩 구직사이트에 구인공고가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직원이 바뀌는 것은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 씁쓸하다.
하지만 나는 반문하고 싶다.
"회사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보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배웠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 회사에서 20년을 다닌 사람의 시간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시간의 길이가 곧 실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세무업계에서는 일하는 기간에 비해 실력이 없는 것을 "
물경력
"이라고 한다.
나는 입사하면 최선을 다해 일했다.
내 모든 시간을 회사에 쏟아부었지만, 회사가 나를 실망시킨다면 주저 없이 떠났다.
오래 버텼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
버티는 것'의 중요성
을 강조한다.
강지영 아나운서와 유재석 MC도 "버텨야 살아남는다"
며 힘주어 말한다.
그들의 말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버틴다고 해서 모두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버틸수록 무너지고, 상처받고, 깎여나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떠나야 성장할 수 있다.
사회는 어디를 가든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나 다 똑같다"며 체념하는 것과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은 전혀 다른 태도다.
사실 '어디나 다 똑같아'라고 하면서, 똑같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다른 곳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구리를 작은 유리병에 넣고 그 안에 고슴도치를 열 마리 풀어놓는다면, 개구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아무리 견디려 해도 상처만 늘어날 뿐이다.
어떤 사람은 "감정도 근육처럼 단련된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감정은 훈련으로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는 부분이 크고, 설령 훈련을 해도 그것은 '강해진 것'이 아니라 '가면을 덧씌운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 달 연애 후의 이별을 겪은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시간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사랑을 한 시간만큼 이별한 시간도 그만큼 보상해 줘야 한다.
그래서 한 달 연애와 10년을 함께한 사람과의 이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10년을 사랑했다면, 이별의 이만큼 보상해 줘야지...
새로운 사랑을 찾기에 충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방전이 많이 되면 많은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짧게 스쳐간 회사는 쉽게 잊을 수 있지만, 오래 머문 곳은 쉽게 보내지지 않는다.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입사했지만, 결국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온다.
힘들다고 해서 무조건 퇴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야근에 지쳐도, 쌓여가는 영수증을 정리하며 느끼는 작은 성취, 마감을 맞췄을 때의 안도감 같은 순간들은 우리를 버티게 한다.
하지만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고 방전만 된다면, 그때는 과감히 떠나야 한다.
버티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버티는 것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성장은 때로 떠남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떠났고, 성장하기 위해 다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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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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