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중독을 ‘의지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들이 흔히 하는 말은 이렇다.
“왜 끊지 못해?”
“마음만 먹으면 되잖아.”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중독은 개인의 결심보다 더 근본적인 환경 구조에 뿌리를 둔다.
그 환경이 너무 공허하거나, 부조화되어 있거나, 의미를 잃었을 때,
인간은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싶어진다.
중독은 무언가가 부족해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중독은 ‘모든 것을 갖췄는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생기기도 한다.
돈이 있고,
가족이 있고,
명예가 있고,
심지어 사랑까지 받는다 해도,
그 사람이 삶의 이유, 존재의 방향, 자기 자신과의 연결을 잃었다면
그때 인간은 삶이 아닌, 자극에 매달린다.
우리가 연예인의 중독,
성공한 사람들의 알코올 의존,
고위직 인사들의 도박 중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직 그들의 공허함을 상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들은
전장에서 마약에 심하게 의존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온 뒤엔 놀랍게도 대부분 중독에서 벗어났다.
이건 무엇을 말해주는가?
중독은 약 때문이 아니라, 망가진 환경 때문이라는 것.
의존은 약물에 대한 게 아니라, 삶의 버틸만한 지점이 없다는 신호라는 것.
즉,
중독이란 약물의 힘이 아니라, 무너진 삶의 구조에서 오는 절망의 반응이었다.
중독은 ‘환경의 해독제’다.
무의미한 직장,
감정이 단절된 가족,
정서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감각만 남은 SNS,
성취로 감정을 대체하는 교육 시스템...
이 모든 것 속에서 인간은 결국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자극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술일 수도 있고
쇼핑일 수도 있으며
관계 중독, 술, 약물, 음식, 섹스, 게임…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핵심은 “그걸 안 하면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감정이다.
중독은 “즐기기 위해” 시작되는 게 아니라,
대부분 “견디기 위해” 시작된다.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구조가,
그를 충분히 받아주지 못할 때
혹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졌을 때,
그는 삶이 아닌 자극에 의존하게 된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다.
삶이 공허하면, 뇌는 감각을 통해서라도 살아있음을 느끼려 하기 때문이다.
중독은 쾌락이 아니라, 존재의 신호다.
결론적으로 중독을 끊으려면, 자극이 아니라 환경을 바꿔야 한다.
사람은 감정적으로 안전하지 않으면 중독된다.
삶이 무미건조하면 중독된다.
내가 사는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낄 때, 중독된다.
그러므로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약이나 자극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야 한다.
더 안전한 관계,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언어,
자극이 아닌 의미,
나다운 환경,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다시 자극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