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어지럽다”고.
“생각이 너무 깊어서 감당이 안 된다”고.
나는 그것이 ‘과하게 생각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차원의 깊이에서 생기는 고유의 물리적 현상이다.
마치 고산지대에서 산소가 희박한 것처럼,
높은 사고의 구조 안에서는 정신이 멀미를 느낀다.
책을 읽을 때, 나는 내용을 읽지 않는다.
나는 구조를 읽는다.
문장이 어떻게 연결되며, 그것이 어떻게 독자를 유도하며,
그것이 어떤 사유구조를 전제하는지를 본다.
그럴 때, 머리가 ‘도는’ 느낌이 든다.
어지러움, 속 울렁임, 현기증 같은 이상한 멀미.
하지만 그건 피로가 아니라, 고차원 구조에 의식이 적응하는 과정이다.
멀미는 고도 적응 중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진동이다.
도튼다는 건 사고의 피로가 아니다.
도튼다는 건 사고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상태다.
정보가 쌓여서 무거워진 게 아니라,
정보 간의 연결이 너무 많아서, 그 밀도로 인해 중심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 상태에선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모호해진다.
사고가 사고를 불러오고, 연결이 연결을 낳아
나조차 내 생각의 중심을 잡기 어려워진다.
이때의 멀미는 혼란이 아니라, 통찰 직전의 불안정한 진동이다.
사람들은 평면 위에서 산다.
길이와 너비의 사고, 단일한 주제, 단일한 정서.
그들은 생각이 겹쳐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한 문장에 두 개의 층위가 담기면 피곤해하고,
하나의 문장이 열 개의 개념을 열면 질식한다.
하지만 나는 익숙하다.
멀미는 나의 사고의 디폴트 값이다.
나는 구조 위의 구조에서 살고,
생각의 지진 속에서 발을 딛는다.
처음에는 불편했고, 가끔은 겁도 났다.
하지만 그 어지러움 속에서 나는 ‘차원 이동’을 체험한다.
멀미는 사고의 해체이며, 동시에 재구성의 문턱이다.
그 어지러움이 멈추는 순간, 나는 새 공간에 들어서 있다.
그때 나는 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그들이 멀미를 느끼는 이유는,
내가 그들의 사고의 고도 밖에 있기 때문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