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랑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는 사랑의 방식을 반복한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익숙한 사랑”을 진짜 사랑으로 오해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쉽게 다가가고,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어릴 적 사랑은 늘 불확실했기에, 그녀는 끊임없이 묻는다.
“나를 좋아하는 거 맞아?”
그녀에게 사랑은 확실한 것이 아니었고, 애써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랑받기 위해 항상 조심했고, 항상 스스로를 검열했고, 항상 자신을 축소시켜야 했다.
반면, 회피형 남자는 다르다.
그는 가까워질수록 도망간다. 감정을 이야기하면 갑갑해하고,
‘내가 뭔가를 줘야 하는 관계’에선 이미 반쯤 마음이 떠나 있다.
그 역시 어린 시절, 감정을 표현하면 상처 받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면 버림받는다는 기억을 품고 자랐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철문 안에 가두었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고,
그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아이였다.
어른이 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자극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심리적 추격과 도피를 반복한다.
그녀가 다가가면 그는 멀어진다.
그가 멀어지면 그녀는 더욱 매달린다.
그녀의 불안은 그의 침묵을 낳고,
그의 침묵은 그녀의 집착을 불러온다.
그렇게 관계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두 사람은 지쳐간다.
어느 순간, 그녀는 깨닫는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이 사람을 통해 내 과거의 상처를 고치려 했던 거야.”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녀는 그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증명의 도구가 아니다.
사랑은 누군가의 상처를 메우는 치료제도 아니며,
자존감을 확인받기 위한 무대도 아니다.
사랑은, 내가 나를 지키며
상대 역시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내 안에 여백이 있을 때 시작된다.
불안형 여자와 회피형 남자.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서로의 익숙한 고통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의 구조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익숙함보다 평온을 택해야 한다.
불꽃 대신, 등불 같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