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는가

by 신성규

나는 한동안 에세이라는 장르를 얕봤다.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적어내리는 건

너무 쉬운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고통을 고통이라 쓰고,

분노를 분노라 쓰는 것.

그건 마치 생각을 걸러내지 않은 날것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로 말하고 싶었다.

내 감정, 내 질문, 내 모순을

타인의 삶으로 번역하는 훈련이

더 고급 기술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썼다.

숨기고, 암시하고, 배치하고, 구조를 설계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가장 늦게 도착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완성되지 않았다.

글은 머릿속에만 존재했고,

강박은 문장을 마르게 만들었고,

완성도에 대한 집착은

작품을 완성 그 자체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나는 결국 쓰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다시 에세이를 집어들었다.


더 이상

고급 기술이나 문학적 장인 정신 같은 말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덜 정제된 문장으로라도,

드디어 내 마음의 형태를 남기고 싶었다.


에세이는 나에게

타협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야기가 되지 못한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어 써내려 간다.

소설로 만들 수 없었던 밤들을,

말이 되지 않아 고여버린 질문들을.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쓰는 것이,

살아있는 나를 증명하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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