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고요한 밤에,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첫 잔은 다짐처럼, 두 번째 잔은 용기처럼,
세 번째 잔은 변명처럼.
하지만 그것은 좋지 않았다.
술은 잊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기억을 덮는 안개를 뿌릴 뿐.
그 안개 속에서 기억은 잠시 길을 잃은 척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불쑥 다시 나를 찾아온다.
더 날카로운 모습으로.
술에 취하면 웃을 수 있었다.
울 수 있었고, 잘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기억을 외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면이 곧 망각은 아니다.
나는 술을 마셨고,
어느 순간부터 술이 나를 마시기 시작했다.
내 안의 공허를 술이 파고들었다.
나는 잊으려 마셨지만,
기억은 술과 함께 더 깊은 곳에 숨었다.
숨겨진 기억은, 사라진 기억보다 더 강하다.
그것은 꿈처럼 반복되고,
가슴속을 조용히 갉아먹는다.
이제 나는 안다.
망각은 술이 주는 선물이 아니다.
망각은 직면과 고통을 통과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다.
기억은 마르지 않는다.
그건 물이 아니다.
그건 불이다.
덮으면 연기 나고,
누르면 뜨거워진다.
나는 이제 술잔을 내려놓는다.
기억을 껴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개 속을 더 이상 돌고 싶지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