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토냉 아르토의 미학

by 신성규

예술은 때로 아름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아름다움은 고통을 품을 때 태어난다.

앙토냉 아르토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예술을 앓았고,

예술을 통해 살아남았으며,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광기와 미학을 동시에 펼쳐냈다.


그는 말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말을 잃은 자리에서 태어났다.


앙토냉 아르토.

1896년 마르세유의 하늘 아래, 그는 병약하게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그는 말을 제대로 뱉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말이 그의 내부에서 고통처럼 뒤틀리고 있었다.

뇌염 후유증으로 인한 평생의 신경통,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던 고통.

그는 언어를 선물이 아니라 형벌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고통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시를 썼고,

배우가 되었고,

연극 이론가가 되었고,

심지어 몸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 비언어적인 진실을 끄집어내려 했다.


그는 예술을 설명하지 않았고,

예술이 그를 집어삼켰다.


우리는 종종 ‘미학’을

균형, 조화, 심미적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르토에게 미학이란 몸의 경련,

말이 끊긴 자리에서 남은 침묵의 리듬이었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매끈한 표면이 아니라,

상처에서 피어나는 리얼리티였다.


1920년대 파리,

아르토는 브르통과 함께 초현실주의를 하며

당시 문단과 연극계를 비명처럼 찢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도 머물 수 없었다.

초현실주의조차 그에게는 너무나 이성적이었다.

그가 원한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몸을 찢는 진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무너뜨리는 체험,

언어를 넘어선 미학이었다.


그는 외쳤다.


“극장은 삶처럼 진짜여야 한다.

아니, 삶보다 더 진짜여야 한다.”


그가 만든 잔혹극의 연극은

이야기가 아닌 몸의 언어,

플롯이 아닌 의식의 리듬,

연기가 아닌 실존의 해체를 요구했다.


아르토의 미학은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다.

시청각적 쾌감이 아니라 감각의 혼란이다.

관객은 무대를 바라보지 않고,

무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실과

몸으로 조우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버텨주지 않았다.

그는 정신병원에 갇혔고,

전기 충격 치료를 받았으며,

그 안에서 다시 쓰고, 찢고, 외쳤다.


그의 삶은 구조가 없었다.

그의 문장은 경계를 모르고,

그의 연극은 플롯을 거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남긴 것들은 오늘날의 현대 예술을 형성한 뼈대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술을 ‘산업’이라 부른다.

기획과 전략, 시장성과 완성도로 포장된 결과물.

그러나 아르토는

예술을 무대가 아니라 절벽으로 보았다.

떨어져야만

참된 무언가가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예술가들은 아르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브러시로 칠하고, 글을 다듬고, 멜로디를 정제하며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시대에

몸과 마음을 바쳐 미쳐야만 예술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르토에게 예술은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

살아있다는 사실을 비틀어 입증하는 행위,

그리고

정신이 허물어지기 직전까지 몰고 가는 실험이었다.


아르토는 자신을 태우는 방식으로 예술을 만들었다.

그의 시는 불꽃이었고,

그의 글은 상처였으며,

그의 무대는 의식의 지진이었다.


그의 예술은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예술만큼 진실하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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