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박수, 명성의 오염

by 신성규

“유명해졌냐”는 질문은 사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것은 일종의 무지의 박수갈채다.

대중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찬양하고,

무게를 모른 채 따라 외운다.

그리고 그 허위를 기반으로 ‘위대함’을 판별하려 든다.


명성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해 없이 소비되는 인식,

무지한 자들의 동의,

공허한 반복의 합창.


사르트르, 카프카, 니체.

그들의 이름은 이제 인스타그램 밈이 되고,

그들의 문장은 명언처럼 잘려서 팔린다.

그러나 그들이 몸으로 밀어붙인 개념의 심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사유의 음영은

그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그 무거운 고백과 실존은

이제 “짙은 분위기”라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위대한 작품은 감히 설명되지 않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건 유명하니까 좋은 거지”로 바뀐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것은 죽은 것이다.


진짜 철학, 진짜 예술은

바보들이 침묵할 때, 그 진실에 가까워진다.

그들이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할 때,

그 작품은 아직 살아 있다.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

아직 진실에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해받기보다,

오해받고 싶다.

이해되지 않음으로써 내 생각의 온도를 지키고 싶다.

바보가 나를 안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할 것이다.


오히려 그건 축복이다.

아직 내가 위대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아직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는 신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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