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이름으로 위대함을 소비하다

by 신성규

모두에게 이해받으려는 건 바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유명하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숭배하며,

진짜 깊이에 도달하지 않는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왜 위대한지

대부분은 모른다.

그저 교과서에 있고, TV에서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그들이 위대한 줄 안다.

그러니까 믿는 것이다.

“그렇다더라”는 믿음.

그 자체로 무지의 종교.


음악의 구조를 해부하지 못하고,

그들의 삶의 역설과 절규를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그 이름 석 자를 외운다.


그러니

모두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

내 생각을 설명하고 공감받으려 애쓰는 것,

그것은 본질적으로 방향이 잘못된 시도다.


세상의 위대함은 언제나

대중이 뒤늦게 이해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해받은 사람은 없었다.

이해는 종종 죽음 이후에 찾아왔고,

그마저도 왜 그 사람이 위대한지는 모르고

그저 “다들 좋다 하니까” 좋다고 여긴 것이다.


나는 이제 이해받기를 구걸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전파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진짜 깊이 있는 무언가는

처음엔 오해받고, 그다음엔 무시당하며,

마지막엔 과대평가된다.


나는 그 과정을 감수할 수 있는 쪽에 서 있겠다.

수십 년 후, 누군가 내 문장을 보고

“그땐 왜 이 말을 아무도 몰랐을까”라고 말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스스로를 이해한 사람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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