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인간 자동차론

by 신성규

가끔 내가 사고차 같다는 생각을 한다.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어디 하나는 부서져 있고,

가끔은 잘 달리다가도 예고 없이 꺼진다.

겉은 번쩍거려도, 본넷을 열어보면 용접 자국이 있다.

혼자 있을 때만 나는 내 소음을 온전히 듣는다.

그래도 아직 엔진은 돌고 있다.

연료도 남아 있고, 방향은 잃지 않았다.


나는 여자를 차에 비유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비유가 꽤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불쾌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엔 이 사회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차는, 처녀다.


그 누구도 타지 않은 상태.

광이 살아있고, 결함이 없어 보인다.

세상은 여전히 ‘새것’을 숭배한다.

‘순수’라는 허상에 집착하며,

무경험과 미사용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건 경험이 없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더 나은 존재는 아니다.


경차는, 비싸지만 작고 귀여운 여성이다.


과소평가되지만 실속 있고, 관리가 잘 되면 오래 탄다.

주차도 편하고 세금도 적다.

그러나 ‘작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기도 한다.


중고차는, 나이든 매력 있는 여성이다.


사용 경험이 있지만, 어떤 이는 그 흔적을 멋이라 부른다.

누구 손을 거쳤는지보다, 지금 어떻게 관리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히려 잘 정비된 중고차가 신차보다 믿음직할 때도 있다.


영업용 차량은, 창녀다.


많은 이들이 타지만 아무도 주인이라 하지 않는다.

반복된 이용, 반복된 무관심, 반복된 소비.

그러나 그 차들도 분명 어딘가 누군가의 ‘첫 차’였던 시절이 있었다.


렌트카는, 스폰녀다.


잠시 타지만 소유하지 않는다.

돈으로 빌리는 관계.

책임 없는 욕망과 시간 제한된 환상.


1인 소유 렌트카는, 잘 관리된 창녀다.


이력은 많지만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일반인 소유 이력 10건짜리 중고차보다 더 신뢰가 갈 때도 있다.

편견은 많지만, 경험은 더 많다.

편견을 이기는 건 결국 성능과 실력이다.


올드카는, 아줌마다.


오래되었지만 꾸준히 타는 이들이 있다.

정든 느낌, 손에 익은 조작감.

시간을 함께 한 만큼의 안도감.

누군가에겐 불편하지만, 누군가에겐 유일무이한 취향.


대배기량 스포츠카는, 몸매 좋은 여성이다.


고가이고, 고위험이고, 외형적 매력이 강렬하다.

타고 싶어도 유지하기 어렵다.

관리도 어렵고, 피로도도 높지만,

달리는 순간만큼은 짜릿한 만족을 준다.


여자가 차와 비슷하다는 말은 사실,

우리가 사람을 물건처럼 이해하고 소비해왔다는 고백이다.

사랑도 연애도, 감정마저도

‘연식’, ‘키로수’, ‘사고 이력’, ‘소유주 수’로 판단하고 싶은

불안한 인간의 시스템.


그 프레임에선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렌트카였고,

누군가의 중고차였고,

때론 자가용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나는 폐차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엔진은 여전히 돌고 있고,

기름은 적당히 남아 있고,

때로는 고속도로에서 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모든 차들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고차다.

운이 나빴고, 부딪혔고, 몇 번 수리소를 거쳤다.

도장을 다시 했고, 부품을 몇 개 바꿨다.

누군가는 사고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나를 멀리한다.

하지만 내 차체 안에는 수많은 회복의 흔적과 기적이 녹아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고, 더 인간적이다.

사고차인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멀리 달리는 차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새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직하게 달렸는가,

얼마나 고장나고도 다시 일어섰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


어쩌면 나는 사고차가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스터마이징 차량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이력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비의 흔적을 품고 달릴 수 있는 차.

사고차인 나도,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8화그들은 고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