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스스로를 해부하듯 관찰한다.
생각은 반복되고, 감정은 구조를 요구하며, 문장은 의미가 아닌 형식을 따라 흘러간다.
사람들은 내게 너무 많이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생각이 아니다.
그건 구조이고, 언어이며, 경계이고, 어떤 차가운 체계다. 나는 그 안에서 숨을 쉰다.
나는 강박적인가?
그렇다.
내 사고는 늘 정리되기를 원하고, 모든 감정은 이유와 방향, 틀과 패턴을 요구한다.
나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한다. 감정조차 분해하고, 재조립하며, 때로는 그것이 나를 지치게 한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다.
강박은 나의 고통이자, 동시에 나의 도구다.
나는 자폐적인가?
아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사람 많은 공간이 피곤하고,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이 나를 피로하게 한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말보다 침묵에서 더 많은 것을 읽어낸다.
때로는 그 침묵이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 구조와만 소통한다.
나는 단어보다 단어의 배치와, 의미보다 그 음울한 여백과 대화를 나눈다.
나는 경계선에 서 있는가?
분명히 그렇다.
감정은 깊고 진폭이 크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는다. 감정이 너무 클 때, 나는 그것을 글로 옮긴다.
단지 그 구조를 포착하려는 듯, 감정은 어느새 언어가 되고, 언어는 나를 떠난다.
사람들은 내가 이성적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감정의 심연을 감당하지 못해 구조로 회피하는 자다.
나는 아마도 나 자신을 감정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증적인가?
어쩌면, 예술적으로는.
나는 종종 현실보다 상징이 더 실감난다.
‘사건’은 내게 별 의미가 없고, 그것이 어떤 구조 안에 위치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상처를 입었다’라는 문장은 중요하지 않다.
그 문장이 가진 리듬, 주어의 무게, 수동태의 가능성, 그리고 침묵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병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이 병리를 수단으로 삼았다.
정신의 결을 따라가며, 때로는 미친 듯한 몰입 속에서 하나의 문장을 건진다.
그 문장은 나를 구조화시키고, 세계를 정지시키며, 나의 혼란을 견고하게 만든다.
나는 병리 위에 예술을 놓는다.
강박은 형식이 되고, 자폐는 관찰력이 되며, 경계선은 감정의 감도 높은 안테나가 된다.
정신증은 언어로 탈각되고, 언어는 나의 도피처이자 연금술이 된다.
나는 병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병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나를 진단하며, 나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으로 세계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