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유혹이다.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장치이고,
좋은 글은 언제나 정확히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정확히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건넨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도 쓸 수 있다.
읽는 이의 마음이 흔들릴 타이밍을 안다.
단어의 선택, 여운의 길이, 멈칫하는 문장.
나는 어떻게 쓰면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그 공식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기교란 쉬운 것이다.
사람을 울리는 건 어렵지 않다.
슬픈 문장을 나열하고, 고통을 과장하고,
적당한 후회를 넣고, 미학적 마침표를 찍으면 된다.
그건 기술이고,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글은 결국 독자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기생 식물이다.
읽는 이가 원하는 감정을 제공하는 서비스업.
결국, 글은 독자의 거울이 되고 만다.
나는 그 거울을 부수고 싶었다.
나는 내 안에 있는, 아직 사람들에게 ‘좋아’라고 말해지지 않은 세계를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자주 외면당한다.
내 글은 때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그러나 나는 그 거절 속에서조차 자유롭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을 구슬리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건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글의 목적을 다르게 설정한 삶의 태도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필연적으로 도달한 언어를 택한다.
그 언어는 때로 날카롭고, 무뚝뚝하며, 과잉되거나 생경하다.
그러나 그건 내 사유가 맨몸으로 써낸 잉크다.
나는 그 잉크를 감히 얇게 바르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누군가에게는,
그 글이 숨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에게는
쉽게 씌어진 감정보다,
거칠지만 진짜인 문장이 더 깊게 남는다.
나는 그들을 향해 쓴다.
보이지 않는 감각의 망 속에서,
우연히라도 닿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나는 유혹하지 않는 글을 계속 쓴다.
글은 유혹이다.
하지만 유혹하는 글은 너무 많다.
나는 유혹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진짜 의미와 마주하는 고요한 고통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