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잘 안다. 아니,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강하다.
내 약점이 어디 있는지, 내 결함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를 단속하고, 관리하며, 정제된 인간이 된다. 초이성의 이름으로.
나는 나를 납득시킬 줄 안다. 화가 나도, 슬퍼도, 욕망이 일어도
“지금 이 감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 반응은 합리적인가, 도덕적인가, 혹은 창피한가”
자문하며 감정을 잠근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처럼, 나는 스스로의 감정의 엄마가 된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그 감옥은 풀린다.
나의 초이성은 알코올 앞에서 졸고 있다.
억압된 감정들이, 견디다 못해 바닥에 쌓여 있던 것들이,
토사물처럼 역류한다.
내가 억누른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눌러둔 것이었다.
내 이성의 굴레 안에서 숨죽였던 내 욕망, 내 분노, 내 고통은
기회를 보았다가, 밤의 술기운을 타고 기어오른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이성적인 인간이었을까?
아니면 이성이라는 말로 나 자신을 감금한 채
감정을 몰래 학대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초이성이 만든 교도소의 수감자이자 간수다.
그런 나에게 술은 탈옥의 도구다.
잠깐의 자유. 그러나 뒤따르는 건 후회와 자책.
그러니 다시 초이성의 감옥으로 돌아간다.
조금 더 두껍고, 조금 더 견고한 벽을 쌓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벽을 허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성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숨 쉬게 되기를.
나는 초이성이라는 위장을 벗고, 내 결함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더 인간적인 강함을 배워야 한다.
진짜 강함이란, 무너지는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