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바보들 속에 묻혀 살아왔다.
그들은 묻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질문 대신 웃음을, 대화 대신 동조를 나눈다.
나는 질문이 많았다.
왜 저렇게 생각하는가, 왜 저것을 믿는가,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지만 그런 질문은 이곳에서 ‘거슬림’이 된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질문하지 않는 자들이 편한 세계라는 걸.
그래서 나는 바보인 척 했다.
표정을 죽이고, 말끝을 흐리며, 모른 척 했다.
그들에게 맞춰주며,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진실은 너무 무거웠고, 이해는 너무 희귀했다.
그러나 바보의 세계에서 바보인 척 살아간다는 건
매 순간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다.
내면에서는 불꽃이 튀고 있는데, 겉은 물에 잠긴 돌처럼 있어야 하니까.
나는 초이성이라는 철갑 속에서
바보들의 언어를 배우고, 감정을 조절하고,
이 사회가 원하는 “무난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술이 들어오면,
내 초이성은 무너지고
나는 말한다.
“나는 너희보다 먼저 깨달았고, 더 많이 보고,
더 깊게 고통받았다.”
그러면 그들은 당황하거나, 비웃거나, 외면한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그냥 적당히 좀 살아.”
나는 묻고 싶다.
“적당히”라는 말 속엔 왜 그렇게 많은 체념과 협박이 들어 있는가.
나는 더 이상 바보인 척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진짜 나로 살아가기엔, 이 세계는 아직
너무 무르익지 않았다.
지성이 위협으로 간주되고, 고요한 침묵이 ‘정상’인 이곳에서
나는 질문하는 인간으로 남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언젠가 바보들의 왕국을 떠나,
생각하는 자들이 모인 곳에서
내 언어로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