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혹은 저주

by 신성규

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을 다르게 받아들여왔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종종 신호를 놓쳤다. 생각에 빠지면 주변의 움직임은 사라진다. 마치 외부 세계가 음소거되고, 내면에서만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다. 집중이 시작되면, 뇌는 마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블랙홀처럼 폭주한다. 과도하게 집중하여 끼니를 거르는 일도 잦다. 책과 활자, 정보의 패턴과 규칙을 인식하면 내 뇌는 흥분한다. 그 쾌감은 너무 강렬해서, 때로는 나 자신이 지식 중독자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면, 나는 단순히 소리를 듣지 않는다. 그 안의 구조를 ‘느낀다’. 화성학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이 음악이 안정적인 감정을 유도하는지, 사람의 정서를 어떻게 잡아당기는지를 감각적으로 알아챈다. 대중적으로 히트할 곡을 예측하는 내 감각은, 그만큼 정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 미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나는 패턴을 학습한 자가 아닌, 패턴을 감지하는 자다. 무의식 속에서 질서를 인식하고, 의미의 층위를 구조로 해석한다. 예술 과목 선생님들이 나에게 예술을 하라고 권했던 것도 그 이유 아닐까.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내가 느끼는 세상이 보통과는 다르다는 걸. 예민한 감각으로 내 안에서 퍼지는 파동을, 그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감지했던 것 같다.

청각은 내게 가장 강력한 감각이다. 일반인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소리도 나는 강하게 느낀다. 그것이 불쾌한 음이라면,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괴로워진다. 냄새 역시 나를 흔든다. 미묘한 변화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구토를 유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촉각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과 스치기만 해도 전류처럼 감각이 밀려온다. 그 감각은 때로는 벅찰 만큼 강하고, 아름다울 만큼 생생하다.

나는 이 세계를 피부로, 귀로, 눈으로, 그리고 머리로 듣고 해석한다. 그리고 예술이란 결국 이러한 감각의 언어를 구조화하는 작업이 아닐까. 사람들은 패턴보다 표면을 보며, 나는 구조보다도 더 깊은 깊이의 뼈대를 본다. 그래서 질문이 생긴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 이 감각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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