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본다.
남들이 지나치는 세밀함을 본다.
말끝의 미묘한 떨림,
표정 속 0.1초의 진심,
세상의 질감과 구조 —
나는 그것들을 파고든다.
나는 최고급 현미경이다.
문제는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다.
너무 깊이 들어가서
전체를 잊는다.
한 점에 몰입해
그 옆의 우주를 잊는다.
나는 정확하게 진실을 본다.
하지만
부분의 진실이
전체의 진실이 아님을,
때때로 너무 늦게 깨닫는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깊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넓이에 있다.
다른 시야, 다른 관점,
다른 언어 속에서 피어나는
관계의 구조에 있다.
현미경은 깊지만,
지도는 넓다.
나는 지금
지도와 같은 시야를 원한다.
전체를 꿰뚫는 시선,
그리고 구조와 구조 사이를 잇는 직관.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를 흔든다.
나는 수직으로 파고들어
본질에 닿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수평으로 확장되어
세상의 연결 구조를 이해하고 싶다.
이제는 나의 현미경 위에
망원경과 지도,
그리고 은유와 공감을 얹고 싶다.
깊이는 나의 무기이자,
나의 갇힘이었다.
이제 나는
넓이의 세계를 갈망하는 깊이의 사람이다.
나는 잘 본다.
그리고 이제,
더 넓게 보기 위해
잠시 잘 보는 것을 멈출 줄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