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후작을 떠올리면 대부분은 짐작 가능한 표정을 짓는다.
변태, 성도착, 퇴폐적 귀족…
그런 이미지들은 우리 머릿속에 너무나 깊이 각인되어 있다.
심지어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용어까지 그로부터 유래했으니,
사드는 결국 욕망의 사내, 그것도 비정상적 욕망의 표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사드는 다른 인물이다.
그는 형벌, 특히 사형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철학자였다.
그가 살았던 18세기 말 프랑스는 프랑스혁명의 혼돈기였고,
혁명은 자유와 정의를 외쳤지만
그 정의는 단두대 위의 정의였다.
사드는 말한다.
“사형은 국가가 저지르는 살인일 뿐이다.”
그는 그렇게 국가권력의 위선을 벗기려 했다.
도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폭로하려 했고,
법과 권력이 어떻게 욕망을 통제하고 형벌로 정당화하는지를 비판했다.
그의 텍스트는 난해하고 불쾌할 만큼 노골적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전략적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자유의 실험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에 담아냈다.
욕망의 극한, 권력의 변태성, 종교의 위선, 정의의 잔혹함.
그 모든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는 자기 자신을 더럽혔다.
사드의 글은 읽기 괴롭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왜 국가는 사람을 죽일 권리를 가지는가?
도덕은 언제 권력의 도구가 되는가?
성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에 살며,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는 누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드는 이미 그 시대에 그것들을 상상했다.
그는 시대를 앞질러 살다가, 시대에 의해 철저히 배척당한 자였다.
나는 이제 사드의 저작들을 ‘성의 철학’이 아닌,
‘자유의 철학’으로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의 외설은 외설을 넘어서 통제와 자유에 대한 정치철학이었고,
그의 사디즘은 사실 국가의 사디즘을 거울처럼 비추는 장치였다.
사드의 소설 속 성적 관계는 단순한 변태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사드가 성직자들을 성적 가해자로 묘사한 이유는 종교가 도덕의 얼굴로 권력을 휘두른다고 본 것.
그가 검열되고 수감된 역사는 ‘사회가 견딜 수 없는 진실’이 무엇인지 묻는다.
나는 그의 재평가를 위해 그를 연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