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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산이 아니라 여행이다

by 신성규

나는 오랫동안 인생을 산이라 생각했다.

높은 봉우리를 향해 한 발씩 올라가는 것,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며, 이마에 땀을 흘리고

어디쯤인지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금 내가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점검하는 삶.


이 사고방식은 내게 분명히 추진력을 주었다.

더 나아가야 했고, 더 올라가야 했고,

더 잘나야 했고, 더 멀리 봐야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문득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정말 살아 있는 삶인가?

혹시 나는 오르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풍경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정작 그 정상에 도달했을 땐

이미 너무 늙거나, 혹은 공허하지는 않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산이 아니라 여행일 수는 없을까?”


산은 분명 정상이라는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기준으로 모든 것이 나뉜다.

올라가고 있는가, 주저앉고 있는가, 뒤처졌는가.

목표가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여행은 다르다.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경로 자체가 목적이 된다.

길을 잃는 것도, 우연히 들른 시장에서 마주한 낯선 냄새도,

함께 걷는 사람과의 조용한 웃음도,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


산에서는 길을 잃는 것이 실패지만,

여행에서는 길을 잃는 것도 여정의 일부가 된다.

산에서는 정상을 향해 걷지 않으면 헛걸음이지만,

여행에서는 머무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삶이다.


나는 이제 인생을 여행으로 바꿔 상상해보려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이 꼭 무언가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그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

그 순간을 살고 있는 내가 곧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인생을 산으로 보면

나는 아직도 올라야 할 길을 남긴 채 불안하다.

그러나 인생을 여행으로 보면

나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위에,

이미 충분히 도착해 있는지도 모른다.


삶을 목표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이제 산에서 내려와 여행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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