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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본질의 은밀한 동형성에 대하여

by 신성규

정치는 신학이다.

신학은 정치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유희가 아니다.

이 둘은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치의 구조와 권력의 정당화 메커니즘에서

놀라울 만큼 유사한 형식을 지닌다.


정치는 권력을 다룬다.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가 침묵해야 하며,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이 모든 결정은 궁극적으로 ‘근거 없음의 근거’,

즉 ‘신’과 유사한 무형의 권위 위에 서 있다.


신학 역시 마찬가지다.

신학은 신의 이름으로 질서를 구축한다.

질서란 곧 위계이고,

위계란 곧 권력의 해석적 구조이다.


이 두 영역은 가시성과 통제의 방식만 다를 뿐,

근원적으로는 진리를 둘러싼 정치이며,

권력을 둘러싼 형이상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정치는 세속적 신학이고,

신학은 초월적 정치다.”


수학은 진리의 형식성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그 ‘형식’이 세계의 해석에 권위를 부여할 때,

그 자체가 논리라는 이름의 제도적 통치로 기능한다.

과학은 객관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무엇이 ‘객관’인지 결정하는 것은

대개 집단적 합의와 제도적 권력이다.

철학조차도 “진리란 무엇인가”를 묻는 순간,

그 진리에 복속되지 않는 자들을 ‘비이성’이라 규정한다.

즉, 모든 학문은 자기 내면에 권력 장치를 내장하고 있다.


그것이 신의 이름이든,

국가의 이름이든,

시장 혹은 이성의 이름이든

그 기반은 결국 비슷한 통치 구조로 회귀한다.


결국,

학문의 끝은 다시 하나의 중심점으로 수렴한다.

그 중심은 이름을 바꿔가며 반복된다.


국가

이성

시장

과학

인간


우리는 이름을 바꿔가며,

동일한 구조를 숭배한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각기 다른 옷을 입은

본질과 권력의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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