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사건 그리고 불평등

by 신성규

우리는 항상 사건이 벌어진 후에야 움직인다.

사망자 숫자가 뉴스 자막에 뜨고, 아이가 깨어나지 못한 채 연기에 질식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부는 ‘안전 대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아파트는 이미 위험했다는 것을.

그 콘센트는 오래전부터 타들어 가고 있었다는 것을.

사고는 예고되지 않았지만, 구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불이 나는 건 ‘예외’가 아니라, 그 구조의 논리적 귀결이다.


스프링클러는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돕는다.

하지만 노후 아파트의 다수는 1990년대 이전에 지어졌고,

당시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조항이 없었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가구는 비용 부담으로 인해 설치하지 못했다.


문제는 단지 스프링클러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전선은 타들어갔고, 콘센트는 마모되었다.

화재는 그저 도착한 것뿐이다.


화재의 절반 이상은 ‘전기’에서 시작된다.

그 중 다수가 노후 콘센트나 과열된 멀티탭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콘센트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탄 냄새가 날 때쯤이면 이미 늦었다.


그렇다면, 기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노후 콘센트 감지 기술’,

‘스파크 발생 시 자동 차단 장치’,

‘과열 감지 및 스마트폰 경고 시스템’

이 모든 것은 지금도 구현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설치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누가 치르냐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치른다.


우리는 스프링클러를 하루아침에 모두 설치할 수 없다.

그렇다면 불이 나기 전까지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전국 노후 아파트 ‘무상 화재 위험 점검’ 실시

지자체, 전기안전공사, 한국전력 등과 협력

콘센트, 차단기, 벽 내부 전선의 열화 상태 등 종합 점검

위험 등급 분류 후 공공 DB 구축


2. ‘스마트 플러그·차단기’ 국가 주도 보급

과열 감지, 전류 이상 차단, 스마트폰 연동 알림 기능 포함

제조사와 협업해 대량 생산 단가 하향

우선순위: 고령자 거주 가구, 저소득층 밀집지역


3. 민관 협력 기술지원 플랫폼

대기업(삼성, 한전, SKT 등) 참여 유도

기술 개발 + 제품 공급 + 유지관리 일체화

ESG 관점에서도 기업 참여 유도 가능


4. ‘점검 받을 권리’의 제도화

노후 아파트 거주자의 화재 예방 진단은 의무가 아닌 ‘권리’로 전환

정책적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기본적인 안전을 누릴 권리 보장


우리는 종종 ‘예산’을 이유로 생명을 미룬다.

하지만 한 아이가 깨어나지 못하는 대가보다 무거운 예산은 없다.

불은 예고 없이 오지만, 무책임은 늘 예고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완벽한 시스템보다, 사고가 오기 전 ‘조금이라도 준비된 사회’를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기술은 있다.

의지도 만들 수 있다.

이제 남은 건, 우리 모두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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