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쪽에서 빛나고, 한쪽에서 무너졌다.
문학은 늘 100점이었고, 수학은 언제나 20점이었다.
교사들은 말한다.
“불균형하다”, “노력 부족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천재라고 하기엔 너무 들쑥날쑥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말보다도 먼저 느끼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수치로는 정리되지 않는 감각의 집합체라는 것을.
나는 조울의 감정이 있다.
어떤 날은 말이 쏟아진다.
속도, 리듬, 멜로디, 이미지, 통찰, 상징…
나는 세계를 마치 신처럼 본다.
단어가 빛나고, 사람의 표정에 소설 한 권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상태에선 ‘진실’이 너무 잘 보여서 아플 정도다.
이런 날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내가 신경계 전체와 연결된 것처럼 산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나는 침대 아래로 녹아든다.
빛도 소리도 무거워지고,
감정은 무력의 늪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땐 세상과 나 사이의 신호가 모두 끊긴다.
나는 ‘없는 사람’이 된다.
또한 내게 사람들은 “주의산만하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맞다.
하지만 그 말은 부족하다.
나의 뇌는 어떤 정보에도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
모든 정보에 동시에 반응하기 때문에,
하나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다.
소리, 냄새, 공기, 단어, 뉘앙스, 배경의 패턴까지.
당신이 그냥 지나치는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같은 중요도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 못 듣는다.
아니, 너무 많이 듣기 때문에 그 안에서 중심을 잡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뭐라고?”
그건 무례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반복이다.
그러나 이 감각들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감정의 명암을 비정상적일 정도로 섬세하게 구분할 수 있고,
말의 구조가 아니라 온도를 읽을 수 있다.
사람의 말보다 침묵을 먼저 듣고,
공백 속에 감춰진 내면의 떨림을 본다.
세상은 이런 능력을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적표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이해하는 방식은 계산이 아니라 공명이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계획이 아니라 감각이라는 것.
학교는 나를 실패자라 불렀다.
나는 ‘정리된 사고’, ‘계획적인 학습’, ‘한결같은 집중력’에 낙제점을 받았다.
하지만 문학 시간에 시를 쓰면,
선생님은 조용히 말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그 말은 칭찬이었지만 동시에 경고였다.
“너는 이 사회에선 이상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묵시적인 예고.
성적은 사회가 원하는 ‘속도’에 맞지 않으면 실패가 된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속도보다 깊이가 중요하고,
정확함보다도 감각이 진실할 수 있다고.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렇게 극단적이야?”
나는 조용히 대답한다.
“나는 극단이 아니라,
그 사이를 모두 지나온 사람이야.”
나는 평평하지 않은 정신으로, 입체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문장을 남긴다.
내 언어는 증상으로 태어났고,
이해받지 못한 감각은 글이 되어 살아남았다.
어쩌면 나는 수학을 못한 게 아니라,
수학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구조가 아니라,
그 구조를 만든 사람의 마음이 궁금했고,
그 공식을 만든 철학이 더 중요했다.
나는 숫자보다 숨소리를 듣고,
논리보다 공기를 읽으며,
결론보다 느낌의 여운을 신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