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도우미

by 신성규

나는 한때 노래방 도우미와 사귄 적이 있다.

그녀는 웃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남자들이 원하는 웃음이 뭔지, 어떻게 해야 분위기가 무르익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있을 때도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 웃음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직업적 반사작용인지 헷갈렸다.

어느 날, 나는 말했다.

“나한테 노래방 도우미처럼 행동해봐.“


그녀의 눈에서 웃음이 꺼졌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역할’로 호출했다는 것.

그녀는 나를 사랑했던 연인이 아니라,

돈을 받고 웃음을 제공하던 자신으로 호출당한 것이다.


그녀의 삶은 검은색과 흰색이 아니었다.

낮에는 평범한 친구들과 만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늦은 밤에는 낯선 남자들에게 이름도 없이 불렸다.

가끔은 웃었고, 가끔은 토했고, 가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하곤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남자들한테 나였던 적이 없어.”


도우미로서의 그녀는 가면을 썼다.

그 가면은 안전장치였고, 보호막이었고, 때로는 무덤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잃었고, 동시에 단단해졌다.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내가 알던 여자였나, 아니면 내가 소비하던 여자였나.


그날 내가 던진 말 속엔,

욕망과 권력, 소비자의 시선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녀를 연인으로 대했던 것이 아니라,

한때의 직업적 경험을 나를 위한 서비스로 요청했던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역할놀이가 아니다.

사랑은 환상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상이 벗겨진 민낯의 두려움을 함께 견디는 일이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느낌’을 사랑하는가.

그 사람이 주는 ‘기분’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도우미들은 어떻게 사는가?

그녀들은 이중의 삶을 산다.

그리고 우리는 단일한 시선으로 그들을 단정짓는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자신이 아닌 자신’을 강요하지 않던 순간을 사랑했던 것임을.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도파민 중독자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