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공간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by 신성규

나는 요즘의 예술 공간이 바보 같다고 느낀다.

화방에선 그림만, 글쓰기 카페에선 글만, 음악 작업실에선 음악만,

무용 스튜디오에선 몸짓만 한다.

마치 “여긴 그림의 방이야”, “여긴 글의 방이야”라는 표지판이라도 붙은 것처럼,

예술은 철저히 분리된다.


그건 마치 몸을 해부해놓고, 눈은 눈끼리, 손은 손끼리 모아놓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기능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눈이 보는 건 손끝의 감각을 불러오고, 귀가 듣는 건 가슴을 울린다.

몸은 음악에 반응하고, 음악은 몸짓을 불러낸다.

모든 감각은 서로를 호출한다. 영감이란 결국 이 호출의 다발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예술을 산업처럼 다루기 시작했을까.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분업된 창작 행위는, 자꾸만 ‘전체’를 잊는다.

화가는 글을 읽지 않고, 작가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음악가는 빛을 보지 않고, 무용수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창작의 방은 점점 더 좁아지고, 감각의 창은 닫힌다.


내가 원하는 예술 공간은 그런 게 아니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고,

캔버스를 보다가 갑자기 시 한 줄을 적을 수 있는 곳.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그 느낌을 소리로 표현해내는 곳.

말하자면 영감이 불현듯 튀어나올 수 있도록, 감각들이 섞여 있는 공간.


그곳엔 철학 책이 있고, 피아노가 있으며, 흙 냄새가 나는 화분이 있고,

누군가는 붓을 들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누군가는 말없이 앉아 있다.

모두가 각자의 작업을 하면서도, 서로의 감각을 물들인다.

그 공간은 조용하지만, 깊은 교감의 소리가 들린다.


예술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다.

하나의 감각이 다른 감각을 깨우는 방식으로.

단일 매체가 아니라, 영감의 충돌과 통섭으로.


그러니 나는 바란다.

다시, 예술이 바보 같지 않기를.

다시, 예술이 살아 있는 공간이 되기를.

예술이, 서로를 불러내는 감각의 합창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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