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공감해주는 글이 얄팍하다고 느꼈다.
그런 글은 사람을 깨어나게 하지 못하고, 잠깐의 도피를 허락할 뿐이었다. 마치 취한 자의 잠처럼, 현실은 그대로인데 감정만 일시적으로 눅여주는 무기력한 술 같았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진보해야 한다고 믿었다.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때, 정신은 깨어나고 진실은 가까워진다고.
그래서 나는 말랑한 언어에, 안아주는 말에, “너는 그대로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위로에 저항했다.
그 말들이 사람을 어둠 속에 눕힌 채 다시 잠들게 하는 졸음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이 더 깨어났으면 했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멀리 보길 바랐다.
그것이 나의 진심이었고, 동시에 오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나의 질문이 나를 멈춰 세웠다.
“정신적 진리는, 과연 모두가 도달할 수 있는가?”
나는 믿는다, 진실은 존재한다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두가 그 진실에 닿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너무 지쳐 있고, 누군가는 아직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깨어남은 언제나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야만 하는 것.
외부에서의 각성은 때로 강요가 되고, 폭력이 된다.
그렇게 나는 바뀌었다.
모두가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어떤 순간에는 각성보다 위로가 더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어쩌면 진리를 향한 긴 여정 속에서, 사람을 지치게 하지 않고 함께 머물러주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더 깊은 역할일 수도 있다.
이제 나는 말한다.
“너는 그대로도 괜찮아.”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라고도 말한다.
“그래도, 언젠가 네가 스스로 깨어나길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