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축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는 모든 노력은 어쩌면 ‘벗겨냄’의 과정이다.
지식을 더하고, 개념을 정립하고, 사유를 쌓는 것이 아니라 —
그 반대로, 지식을 비우고, 개념을 의심하며, 사유조차 내려놓는 길.
그 끝에서 우리는 “무”를 마주한다.
그 자리가 진리의 자리일지 모른다.
아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진리에 가장 가깝다.
사랑만을 보고, 사랑을 배우며 자라는 존재.
그들에게는 진리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미 진리로 살아간다.
진리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진리를 향해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문득 생각한다.
고통 없는 진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영혼이 맑은 자에겐,
삶 그 자체가 이미 진리이기에,
그들은 배우지 않고도, 아프지 않고도, 도달해 있다.
그러나 세상은 때로 너무 더럽다.
욕망이 지나치고, 언어가 무기처럼 쓰이며,
우리 내면의 맑음을 오염시킨다.
그 오염은 진리를 가리고, 우리는 길을 잃는다.
그래서 진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태초로, 비움으로 돌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아이처럼 다시 느끼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믿는 것.
그것이 진리의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