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신을 알라

by 신성규

“네 자신을 알라.”

이 짧은 명제는 철학의 시작이라 불린다.

하지만 지금 이 문장을 듣는 우리는,

그 말에 작은 반감부터 느낀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의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누가 내 안을 꿰뚫었다는 듯 훈계하듯 말하는가.

그래서 이 문장은 처음엔 오만하고, 불쾌하고, 불친절하다. 마치 어떤 권위가 너의 위치를 알라는 식으로 훈계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말은 ‘주제를 파악하라’는 경멸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주체를 인식하라’는 철학의 가장 심오한 요청이다.


우리는 자주 세계에 대해 말한다.

정치, 경제, 사회, 구조, 권력, 타인…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출발점은

‘나’라는 인식의 창이다.

그 창이 혼탁하면, 세계도 그렇게 보인다.

내 감정이 왜곡되면, 세계의 구조도 뒤틀린다.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을 오독하는 것은

이 말의 철학적 위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은 결코 그런 하향지시가 아니다.

그는 ‘네가 생각하는 세계, 정의, 진실이

너 자신으로부터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보라’고 말한 것이다.


자신을 아는 일은 자기를 꾸짖는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꿰뚫어보는 일은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내가 왜 분노했는지,

내가 왜 피했는지,

내가 왜 계속 반복하는지를 아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감정과 타인의 시선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그것은 철학이 주는 가장 실질적인 자유다.

나를 알면, 남의 시선에 붙잡히지 않는다.

나를 알면, 세계에 대해서도 더 이상 겁먹지 않는다.

자기 인식은 굴욕이 아니라 해방이다


주체를 모르는 사람은 세계를 착각한다.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면서 그것이 진실이라 착각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은 철저히 감춘다.


하지만 주체를 직시한 사람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시선을 먼저 해부한다.

그 시선이 어떻게 휘어졌고,

어디에서 상처받았으며,

어떤 방식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지를 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통과한 사람은

세계의 어둠을 직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어둠을 먼저 자기 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은

세계를 보기 위한 철저한 사전 조건이다.

지성의 문턱이며, 진실의 첫 입구다.

자기 인식을 거친 사람만이 세계를 직시한다


주체를 직면한 사람은

자유를 안다.

자신의 욕망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기에

타인을 조정하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해석할 수 있기에

타인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이 철학이 주는 윤리적 태도다.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저 앎의 출발이 아니라

존중의 태도이기도 하다.


이 명제는 쉬운 길을 말하지 않는다.

그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모든 판단을,

먼저 너 자신에게 돌려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은

인간에게 가능한 가장 고독한 철학적 행위를 요구한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출발선을 열어준다.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가?

먼저 그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려는 ‘너 자신’을 의심하라.

그렇게 시작된 철학은,

비로소 나로부터 나아가 세계로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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