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과 불행의 함수

by 신성규

나는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왜일까.

똑똑한 사람일수록, 유난히 삶이 무겁고 서늘해 보인다.

말은 잘하고, 분석도 잘하는데, 마음이 밝지 않다.

대화는 깊지만 웃음은 짧다.


반면, 조금은 단순한 사람들—그들은 이상하리만치 단단하다.

비관도 덜하고, 지나간 일에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나는 이 경험을 두고 내 삶의 ‘빅데이터’를 만들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삶을 비극처럼 받아들이고,

보통의 인지 수준에 있는 사람은 오히려 현실을 선물처럼 받아들인다.


지능이란 건 본래 축복이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지능이 높으면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 배워왔다.

하지만 그 ‘잘’ 산다는 말 안에 감정적 평온이 포함된다면,

그건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


지능은 생각의 깊이만을 선물하지 않는다.

그 깊이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함께 깃든다.

지능이 높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인과관계를 떠올린다.

한 사건에 담긴 구조와 그 너머의 맥락, 그마저도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떻게 변화할지까지 추론해낸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단순한 사건도, 생각이 많아지면 복잡한 문제로 변한다.

사랑, 상처, 부당함, 세계—이 모든 것이 과잉 해석된다.

나의 불행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존재론적 회의로 변한다.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인가” “왜 이 세계는 이렇게 불합리한가”

이 질문의 끝은 어디일까.


보통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의 감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기분이 나쁘면 짜증을 내고, 기분이 좋으면 웃는다.

그 이상은 없다.

그리고 그게 지혜일 수도 있다.


나는 안다.

나는 너무 많이 생각한다.

슬픔을 앞에 두고 그 슬픔이 왜 생겼는지 분석하고,

기쁨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언제 끝날지를 예측한다.

그런 나를, 나 스스로 피로해한다.


어쩌면 정말 똑똑한 사람은, 세계를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람은

기쁨을 충분히 느낄 자유를 상실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나를 조금은 이해하려 한다.

이 슬픔은 내 머리가 만든 감옥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감각과 통찰이 만들어낸 거울이라고.


나는 단순해지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이 복잡함이 나의 본성임을 안다.

그러니 아마 나는, 복잡하게 사는 법을 더 잘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이들의 미소를 잊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도 내 비극을 너무 진지하게만은 보지 않는 사람.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지능의 윤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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