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출발의 장소라기보다, 도피의 문턱이다.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을 견디지 못해 떠나는 것이다.
마치 “이것만 끝나면”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버티는 일상의 고개를 넘고,
그 끝에서 자신에게 말한다. “어딘가로 떠나자.”
그 어딘가는 구체적이지 않다.
파리일 수도 있고, 다낭일 수도 있고, 오사카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어디’가 아니라, ‘여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삶을 설계하는 법이 아니라, 버티는 법만 가르쳤다.
정규직을 얻기 위해 대학을 다니고, 회사에서 참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웃는다.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걸 미덕이라 배웠지만, 그 끝엔
“정신승리”나 “휴가 때까지만”이라는 최후의 마법 주문이 기다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삶을 ‘경험’하는 대신, ‘비우고 견디는’ 법만 남는다.
그러니, 반년을 버티고 일주일을 떠나는 이 순환은 그저 이상한 것도 아니다.
해외여행은 현대인의 합법적 마약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생존 보상이다.
여행은 단지 낯선 곳을 보는 일이 아니다.
감각이 깨어나는 드문 순간이다.
거리의 향기, 음식의 기름기, 언어의 억양, 공기의 온도.
무뎌진 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
그러나 이 회복은 진짜 회복일까?
SNS에 올라갈 사진, 추천 장소, ‘나 이런 사람’이라는 표정은
정말 내 경험일까? 아니면
타인의 환호를 기대하는 연출된 나는 아닐까?
우리는 종종
삶보다 이미지, 감정보다 반응, 존재보다 기획된 여행을 소비한다.
문제는 여행이 아니다.
문제는 일상이 견디는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여행을 중독적으로 원하는 이유는
현재 삶에 주도권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을 디자인할 힘, 내가 가꾸는 시간,
작은 감정에 민감한 감각.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끝없이 외국을 떠돌면서도
결코 자기 삶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여행은 때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여행이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면,
그건 회복이 아니라 지연된 붕괴다.
우리는 ‘잘 떠나는 법’보다
‘잘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의 일상을 다시 감각하고,
작은 하루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뇌를 회복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삶의 확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