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랜 시간 ‘알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왔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세계, 즉 ‘이데아’를 향한 지성의 추구를 말했고, 그 길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의 제자 중 일부는 진리가 너무 멀고, 이데아를 논하는 것이 현실과 괴리된 허상일 뿐임을 체감했다.
동양에서는 불교의 공(空) 사상이 이와 다른 빛을 던진다.
‘무(無)’는 결코 허무나 무지(無知)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집착과 분별을 내려놓은 ‘무아(無我)’의 경지다.
집착하지 않고, 지나치게 알아채려 하지 않는 마음의 고요함.
그곳에서 비로소 고통과 번뇌가 사라지고, 순수한 행복이 깃든다.
현대 심리학은 이 고요함을 ‘인지 부하의 해방’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과도한 정보와 자극이 뇌를 피로하게 하고, 과잉 지식은 불안과 우울을 낳는다.
따라서 적절한 ‘무지’는 정신의 건강을 지키는 보호막이 된다.
이처럼 ‘지식과 무지’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변증법적 관계다.
지식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주지만, 무지는 마음을 쉬게 하고 행복을 지킨다.
진정한 지혜는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있다.
우리가 ‘우매하다’고 말하는 경지는, 사실은 세상과 자신을 내려놓는 높은 경지일지 모른다.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모든 것을 가볍게 품는 지혜.
그것은 알면서도 알지 않는 척하는, 아는 듯 모르는 듯한 삶의 기술이다.
결국, 행복은 너무 많이 아는 데서 오지 않고, 때로는 알지 않음에서 온다.
그 간극을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때,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