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의 미학, 턱과 광대의 품격

by 신성규

한국 사회의 미적 기준은 오랫동안 ‘작고 갸름한 얼굴’로 요약됐다. 특히 무턱에 가까운 부드러운 턱선과 인위적으로 다듬은 V라인은, 방송과 광고 속에서 마치 절대 기준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 기준과 거리를 둔다. 내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얼굴은 오히려 턱이 있고, 약간 마른 얼굴에서 드러나는 턱근육 위의 미묘한 볼패임이 있는 얼굴이다. 거기에는 선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입체감이 있고, 구조적인 고급스러움이 있다.


이런 얼굴은 단순히 턱이 크거나 광대가 두드러진 것이 아니다. 뼈대와 근육이 조화를 이루며 만드는 구조다. 사각턱이 주는 힘, 적당히 돌출된 광대가 만드는 깊이, 마른 볼에 드러나는 음영은 단순한 미형(美形)을 넘어 품격을 드러낸다. 그 선과 면이 만드는 대비는, 보는 이에게 강인함과 여유, 그리고 세련된 거리감을 동시에 준다.


서양 미술사에서 이런 얼굴 구조는 오래전부터 ‘귀족적’으로 인식됐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를 보면, 왕족과 귀족, 지식인의 얼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명확한 턱선과 뚜렷한 광대였다. 이는 단순한 유전적 특징이 아니라, 계급과 생활방식이 만든 얼굴이었다. 영양 상태가 좋고, 햇빛에 타지 않은 창백한 피부 위에 선명한 뼈대가 드러나는 구조는 권력과 여유의 상징이었다. 턱과 광대는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생존 전략을 은연중에 말해주는 표식이었다.


동양의 미학 속에서도 입체적 얼굴은 ‘위엄’을 상징했다. 중국 송대(宋代) 화가들의 인물화를 보면, 관료나 사대부의 초상에는 각진 턱과 두툼한 광대가 자주 등장한다. 조선의 초상화에서도 선비의 얼굴은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단단한 윤곽을 강조했다. 이는 얼굴의 입체감이 단순히 미적 취향을 넘어, 권위와 신뢰를 전달하는 장치였음을 보여준다.


현대 한국의 미적 기준은 매스미디어와 성형 기술이 결합하며 ‘작고 매끈한 얼굴’을 이상화했다. 하지만 그 결과, 얼굴의 고유한 구조미가 사라졌다. 윤곽이 흐릿해지고, 입체감 대신 평면적 아름다움이 강조되면서, 인물의 개성이 희미해졌다. 대조적으로, 턱과 광대가 만드는 입체적 얼굴은 단 한 번 마주해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사진 속에서만 빛나는 얼굴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현실에서 더욱 매혹적이다.


마른 얼굴에서 턱근육 위로 살짝 들어간 볼패임은, 마치 조각가가 마지막에 남겨둔 의도적인 음영 같다. 로댕의 조각에서, 혹은 카라바조의 명암법에서 보듯, 인체의 아름다움은 곡선뿐 아니라 그림자의 깊이에서 나온다. 빛이 닿는 면보다, 빛이 닿지 않는 음영이 그 사람의 표정을 완성한다. 턱과 광대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그 사람의 삶과 기질, 그리고 묘한 고급스러움을 드러낸다.


나는 이런 얼굴에서 ‘존재감’을 본다. 그것은 단순히 예쁜 얼굴이 아니다.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얼굴이다. 부드럽지만 단단하고, 세련됐지만 거리를 지키는 얼굴. 그래서 나는 한국 사회가 미적 기준을 확장하길 바란다. 미의 본질은 획일적인 선에서 나오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뼈대와 근육이 대화하며, 개성이 구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그 얼굴이야말로 진정한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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