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실은 내게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한 듯한 상처였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왜곡된 모습으로만 남았고,
그 왜곡이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그들이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판단하는 바보들이라고.
그런 생각은 나를 방어하는 동시에, 서서히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그들과 거리를 두었고, 내 언어를 내 세계 안에 가두었다.
그 세계는 안전했지만, 동시에 갇혀 있었다.
밖에서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불렀고,
안에서는 내가 세상을 ‘무지한 군중’으로 불렀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서로의 잘못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주 단순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 또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해하려는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
그것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해받지 못하는 피해자’로만 서 있었고,
정작 나도 누군가를 이해하지 않는 가해자의 자리에 있었다.
이 깨달음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삶이 있었고,
그 삶 속에는 내가 모르는 상처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 상처는 나보다 더 깊고, 오래되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일 수 있었다.
그 상처가 그들의 판단을 만들고, 그들의 시선을 결정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말투와 표정 속에 숨은 이유를 읽으려 하고,
그들이 꺼내지 않은 이야기를 짐작하려 한다.
때로는 그들의 침묵이, 나의 침묵과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살았지만,
이해받지 못한다는 그 공통의 고독이,
우리를 묘하게 이어주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오히려, 이해하려는 시도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를 끝까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다.
그 손길은 때로 아무 말 없이도 전해진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켰듯, 언젠가 누군가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이해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어쩌면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