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

by 신성규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실은 내게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한 듯한 상처였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왜곡된 모습으로만 남았고,

그 왜곡이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그들이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판단하는 바보들이라고.


그런 생각은 나를 방어하는 동시에, 서서히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그들과 거리를 두었고, 내 언어를 내 세계 안에 가두었다.

그 세계는 안전했지만, 동시에 갇혀 있었다.

밖에서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불렀고,

안에서는 내가 세상을 ‘무지한 군중’으로 불렀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서로의 잘못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주 단순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 또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해하려는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

그것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해받지 못하는 피해자’로만 서 있었고,

정작 나도 누군가를 이해하지 않는 가해자의 자리에 있었다.


이 깨달음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조금씩 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삶이 있었고,

그 삶 속에는 내가 모르는 상처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 상처는 나보다 더 깊고, 오래되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일 수 있었다.

그 상처가 그들의 판단을 만들고, 그들의 시선을 결정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말투와 표정 속에 숨은 이유를 읽으려 하고,

그들이 꺼내지 않은 이야기를 짐작하려 한다.

때로는 그들의 침묵이, 나의 침묵과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살았지만,

이해받지 못한다는 그 공통의 고독이,

우리를 묘하게 이어주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오히려, 이해하려는 시도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를 끝까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다.

그 손길은 때로 아무 말 없이도 전해진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켰듯, 언젠가 누군가를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이해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어쩌면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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