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즘을 향한 길목에서

by 신성규

섹스는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심리와 감정의 층위가 깊게 얽혀 있다.

나는 어느 순간, 섹스가 마치 기계처럼 수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분석하고, 어떻게 해야 그녀를 만족시킬지 계산하며 행동했다.

이런 ‘기술적 접근’은 때로는 효과적이었다.

여자를 오르가즘에 이르게 했고, 겉으로 보기엔 관계가 잘 유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의 진정한 반응과 쾌감을 놓치고 있었다.

기계처럼 행동하면서 오히려 내 내면은 점점 멀어졌고, 내가 원하는 순간과 감각은 사라졌다.

섹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연결되는 ‘교감’인데,

나는 그 ‘연결’이 아닌 ‘결과’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여자들은 처음엔 그런 노력과 관심에 고마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자로서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 걸까?”

“나는 만족을 주지 못하는 사람인가?”

그런 의심은 자신의 성적 매력과 존재 가치를 흔들었고,

그 불안이 결국 관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그녀들이 그런 자책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섹스를 즐기지 못하는 사실도 더 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왜 만족하지 못할까?’

‘나는 왜 진정한 쾌감을 느끼지 못할까?’

이 질문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결국 그녀들에게도 상처를 준다는 생각에 위축됐다.


더욱이, 내 페티쉬와 욕망을 이해하고 맞춰주려는 그녀들의 노력은 감사했지만,

그 과정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내가 ‘임신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오히려 내 자연스러운 욕망을 억누르고 말았다.

그 책임감은 섹스를 즐거움이 아닌 의무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경험은 결국 ‘기계적 수행’과 ‘진정한 만남’ 사이에서의 간극을 보여준다.

섹스는 단순한 신체적 행위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가 온전히 존재로 만나고, 감정을 나누며,

내면의 두려움과 욕망을 허락하는 순간이다.


내가 지나치게 계산하고 분석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만족시킬까’에 집중하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 순간들은 ‘함께 살아내는 순간’이 아니라,

‘목표를 향한 수행’에 불과했다.


나는 이제 깨닫는다.

섹스가 진정한 교감이 되려면,

그 순간에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져야 하며,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서로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과 두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연결이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섹스는 상대를 ‘만족시키는 일’ 그 이상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두 존재가 서로를 느끼고,

서로의 존재에 응답하며,

서로의 세계를 열어가는 과정이다.


나는 앞으로 기계처럼 계산하고, 결과에 집착하는 섹스를 넘어서고 싶다.

내 몸과 마음을 놓아주고,

그 순간의 흐름과 감각에 귀 기울이며,

상대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진짜 만남을 경험하고 싶다.


그 길은 쉽지 않다.

불안과 책임감,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식이며,

진정한 사랑과 관계의 시작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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