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에 최적화된 사회

by 신성규

일과 여가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 인생은 하나의 긴 업무가 된다.

달력에는 주말이 남아 있지만, 그날조차 머릿속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과 다음 단계의 계획이 차지한다.

일은 단순히 시간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가장 좋은 부분을 먼저 가져간다.

가족이란, 남은 시간을 나누는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대상이다.

그러나 일이 마음의 전부를 선점해버리면, 그 나눔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가정을 꾸린다는 건 사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배우자의 기분을 살피고, 작은 기념일을 챙기며,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

그 모든 사소함에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그런데 일에 몰입한 사람에게 저녁 식사는 하루의 엔딩 크레딧이 아니라,

잠시 숨 고르기 후 다시 달려야 하는 장면 전환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결혼은 점점 ‘선택’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애초에 가족에게 쓸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데다, 관계를 유지하려는 욕구마저 무뎌진다.

처음에는 “언젠가는”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말은 “굳이”로 변한다.

이것은 외로움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외로움에 익숙해진 상태다.


결국, 일과 여가의 구분이 없는 직무는 사람을 ‘비혼에 적합한 상태’로 길러낸다.

마치 물속에서 오래 살다 보면 물 밖의 공기를 숨쉬는 법을 잊는 것처럼.

한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적응하지 못할 환경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위해 일한다고 믿으면서도, 일 속에서만 숨쉬는 생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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