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같은 룰” 속에서 공정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기업 세계에서는 대기업과 영세기업이, 개인 세계에서는 부유층 자녀와 저소득층 자녀가 동일한 규칙에 따라 경쟁한다고 여겨진다. 시험 문제는 모두에게 같고, 법 조항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며, 시장의 룰은 편애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표면적으로는 이보다 더 공정해 보이는 원칙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평등은 역설적이다. 같은 룰은 오히려 불평등을 은폐하는 장치가 된다. 대기업은 자본력과 유통망, 정치적 영향력을 이미 쥐고 있고, 영세기업은 그 출발선에서부터 힘이 달린다. 부유층의 자녀는 풍부한 교육 자원과 문화 자본 속에서 성장하고, 저소득층의 자녀는 기회의 문턱에서 끊임없이 무게를 짊어진다. 이 차이는 규칙이 공평하다는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가 “너희는 같은 조건에서 경쟁했다”고 선언하는 순간, 격차는 능력과 노력의 문제로 둔갑한다.
여기서 우리는 형식적 평등의 폭력을 마주한다. 제도는 차이를 보지 않는다. 제도는 출발선의 불균형을 무시한 채 동일한 룰을 부여한다. 그 순간 불평등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실패로 전가된다. 시험에서 떨어진 이는 노력하지 않은 자로, 사업에서 무너진 이는 실력이 부족한 자로 낙인찍힌다. 이 낙인은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동시에 불평등의 구조를 은폐한다.
이러한 맹목적 평등은 사회를 더욱 분열시킨다. 실패한 개인은 스스로를 탓하고, 성공한 개인은 자신이 “더 나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제도가 균형을 조정하는 대신 무심한 중립을 내세우는 순간, 사회적 신뢰는 깨지고, 연대는 무너진다. 우리는 같은 룰의 이름 아래, 각자 다른 무게의 짐을 짊어진 채 홀로 경쟁하도록 강요당한다.
진정한 공정은 동일한 룰에 있지 않다. 오히려 공정은 다른 조건을 고려하는 제도적 지혜 속에서 실현된다. 영세기업에는 보호 장치가, 저소득층의 자녀에게는 교육 기회의 보완이 필요하다. 출발선의 차이를 교정하지 않은 평등은 평등이 아니다. 그것은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가장 정교한 폭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