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오래 관찰하다 보면 누구나 결국 냉소에 가까워진다. 반복되는 자기합리화와 미성숙, 변화를 말하지만 변하지 않는 본성을 볼 때마다, 희망보다 체념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혹시 인간의 뇌를 고차원적으로 튜닝할 수 있다면, 이 냉소는 사라질까?”
현대의 신경과학은 이미 그 단초를 보여준다. 전기적 자극으로 특정 뇌 영역을 강화하거나, 학습 능력을 높이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칩을 뇌에 삽입하여 인간의 지능을 근본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그때 인류는 지금과는 다른 수준의 지성을 가질 수 있을까?
가능성은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칩은 집단 지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억력과 연산 속도, 패턴 인식 능력이 폭발적으로 향상된다면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계는 새로운 수준의 협업과 분석을 통해 재구성될 것이다.
둘째,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지속될 수 있다. 니체가 보았듯 인간은 권력 의지에 따라 반복하는 존재다. 칩이 들어간다고 해서 질투, 이기심, 자기합리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똑똑한 자기기만, 더 정교한 위선, 더 치밀한 권력 추구만 남을 수 있다. 지능의 증폭이 곧 윤리의 증폭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셋째, 칩이 단순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공감과 자기 성찰, 윤리적 판단을 강화하도록 설계된다면, 인류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가능성도 있다. 칸트가 교육을 통해 도덕성을 길러낼 수 있다고 본 것처럼, 칩은 강제된 교육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생긴다. 그렇게 외부에서 설계된 윤리를 주입받는 인간은 여전히 자유로운가? 하이데거가 말했듯, 기술은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틀이며, 칩은 인간 본질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결국 냉소의 문제는 기술로 해결되지 않는다. 뇌를 튜닝한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이 자동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능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것이 윤리적 초월이나 성숙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미래의 뇌 칩이 만들어낼 인간은 “더 지능적인 바보”일 수도 있다.
나는 인간의 냉소가,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능성과 함께 간다고 생각한다. 인류의 지성이 암담해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 말이 허망한 환상이라 해도, 아마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끝내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고유한 본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