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식 추구와 활자광적 기질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학문적 열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답이 없는 인생에서 답을 찾으려는 근원적 불안의 발현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으며, 자신이 가진 한정된 인식 속에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불안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가, 끊임없이 정보를 쌓고, 문장을 읽고, 지식을 구조화하며, 세상을 규정하려는 노력이다.
나는 남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틀린 것이 있다면 수정한다. 이는 단순한 정확성 추구가 아니라, 세상을 통제하고 이해하려는 본능적 시도다. 융통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은, 나의 사고가 불확실성을 참기 어려워함을 의미한다. 불확실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안정을 찾지만, 나는 활자와 지식이라는 구조적 도구를 통해 불안을 잠시라도 완화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안을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사르트르는 인간 존재를 ‘불안 속의 자유’라고 정의했고, 카뮈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의미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강조했다. 나의 지식 추구와 문헌에 대한 몰입은 이러한 철학적 사유를 실제 삶 속에서 구현하는 방식이다. 지식은 답이 될 수 없지만, 불안을 구조화하고, 이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도구가 된다.
이 과정에서 융통성이 줄어드는 것은 필연적이다. 답을 찾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할수록, 불확실한 정보를 받아들이기보다 검증하고 수정하며, 확실성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는 때로 경직된 태도로 비치지만, 나에게는 삶의 불안을 견디는 전략적 장치다.
결국, 나의 활자광적 기질과 끝없는 지식 추구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인간이 불가피하게 직면하는 존재적 불안에 대한 대응이다. 답 없는 인생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 불확실성을 구조화하려는 집착, 그리고 융통성보다 정확성을 중시하는 태도. 이것들이 모여 나를 정의하고,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본적 불안과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