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감당하려는 자는 자유의 친구인 불안을 감당해야 한다. 선택이 많아질수록 책임도 커지고, 그로 인한 실존적 불안은 피할 수 없는 동반자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 문화에서는 이러한 불안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나 교육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농업적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양, 특히 동아시아의 쌀농사 문화는 집단적 협력과 정밀한 조율을 요구했다. 논의 수위, 물길, 계절의 타이밍까지 모두 공동체의 조화 속에서 결정되었고, 개인의 선택보다는 사회적 규율과 안정이 생존의 핵심이었다. 쌀농사는 공동체 전체의 계획과 협력이 생존과 직결되므로, 자유로운 선택을 감당하는 경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서양의 밀농사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이었다. 밀은 비교적 넓은 땅에서 자라며, 농사의 성공 여부가 개인의 판단과 행동에 크게 좌우된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과정에서 농부는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했다. 자유로운 선택과 그로 인한 불안은 밀농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동반자로 받아들여졌다.
이 농업적 대비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동양과 서양의 자유 감각과 불안 수용 능력에 미묘하게 남아 있다. 동양에서는 질서와 안정이 미덕으로, 불안은 피해야 할 것으로 학습되는 경향이 있다. 서양에서는 선택과 자유가 삶의 핵심으로, 불안은 그 필연적 친구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태도에 그치지 않고, 국가 운영 방식과 지도자의 철학에서도 드러난다. 1990년대, 김대중과 리콴유는 발전과 자유, 그리고 안정의 균형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접근을 보였다.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국민이 스스로 선택하고 불안을 감당하는 과정을 신뢰했다. 반면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 규율과 통제, 안정적 계획을 우선시했다. 그는 국민에게 자유를 주되, 불안까지 감당하도록 강요하기보다는 질서와 예측 가능성을 통해 국가를 안정시키고자 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 전략의 차이가 아니라, 동양인의 기질과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접근법의 차이로 읽을 수 있다. 쌀농사의 전통이 만든 동양적 사고는 개인의 자유보다 안정과 조화를 우선시하며, 불안을 감당하는 경험이 적은 사회적 배경을 반영한다. 따라서 리콴유의 정책은 단순한 권위주의가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자유와 불안은 동양과 서양, 개인과 국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실존적 과제다. 우리는 자유를 얻고자 하지만, 그 자유를 감당하는 불안을 동시에 안아야 한다. 동양적 기질은 이를 집단적 안정과 규율 속에서 완화하려 했고, 서양적 기질은 불안을 동반한 개인적 선택 속에서 자유를 완성하려 했다. 김대중과 리콴유의 논쟁은, 자유와 불안을 감당하는 방식이 문화와 역사, 기질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