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철학

by 신성규

인간은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길 바라며, 힘과 권한을 가진 이들이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반복되는 무책임 속에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게 한다. 한순간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고, 우리는 또다시 권력자의 경솔함을 목격한다.


한편, 세상은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나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인과율을 믿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러나 피땀으로 빚을 갚은 이가 고된 노동 끝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사기로 부를 쌓은 이가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 믿음은 허망하다. 도덕의 법정은 냉혹하고, 종교가 약속한 구원은 점차 힘을 잃어간다.


인간은 이 부조리한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지식과 도덕, 종교에 의지해왔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질서와 삶의 의미를 믿었고, 이를 찾기 위해 철학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선과 악은 서로를 전제로 존재하며, 종교는 물음에 답하기보다는 더 깊은 질문을 남긴다. 과학은 블랙홀의 존재를 증명하지만, 그것이 왜 거기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처럼 인간의 탐구는 언제나 물음 앞에 멈춘다. 세계는 차갑고 고요하게 그 자리에 있을 뿐, 우리가 던진 의미의 그물을 받아주지 않는다. 인류는 이제 깨달았다. 세계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합리적이지 않으며, 특별한 목적이나 운명을 지니지 않았다. 합리성과 의미에 대한 갈망이 클수록, 이 세계의 무의미는 더욱 뼈아프게 느껴진다.


부조리는 바로 이 대비에서 생겨난다. 인간은 끊임없이 명확성을 갈망하지만, 세계는 그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 우리의 질문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세계는 더욱 묵묵부답이다.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냉정한 현실—무의미의 심연이다. 인간은 이 심연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여전히 질문해야만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세계가 합리적이라는 가정을 하면 불행해진디.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과율을 찾으면 안된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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