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역설

왜 사람들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가

by 신성규

현대 사회는 정보의 시대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접할 수 있고, 몇 번의 검색만으로도 전문가처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이것은 단순한 무식함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식에의 접근이 쉬워진 시대일수록,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 즉 ‘무지의 역설’은 더 깊고 교묘해진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 절약적 사고를 선호한다. 복잡한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기보다는, 기존에 알고 있는 스키마(사고 틀) 안에 정보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편이 훨씬 쉽고 빠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접한’ 것을 곧바로 ‘이해한’ 것으로 착각한다.


이런 방식은 신속한 판단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판단의 정확성에는 치명적이다. 정보는 곧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곧 이해가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아는 것’이란 무엇인가?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고, 그것을 근거로 새로운 판단까지 가능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들었다’는 이유로, ‘검색해봤다’는 이유로, ‘누가 말하더라’는 이유로 안다고 여긴다.


그 착각의 바탕에는 자기과신이 있다. 어느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평균 이상이라 믿는 경향을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통계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모두가 그렇게 믿는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사실 아는 것보다 더 귀하다.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는 인식은 자존감과 연결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력감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자신이 아는 범위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자기과신 편향’이 발생한다.


특히 지식이 적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무지를 인식할 메타 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가 설명하는 바다. 무지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무지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현대 사회는 ‘모른다’는 말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모른다는 표현은 무능, 무지, 나약함으로 쉽게 오해되며, 특히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일수록 그러한 취약함을 인정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아는 척하거나 말을 흐리는 방식으로 사회적 체면을 유지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두가 ‘아는 척’ 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모른다’는 말은 점점 더 사라져간다.


지성은 얼마나 아는가보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했고, 칸트는 “이성은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할 때 비로소 순수해진다”고 말했다. 현대 과학 역시 ‘확실성’보다는 ‘불확실성을 측정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결국, 진정한 지식은 의심의 지속성과 무지의 자각을 전제로 한다. 아는 것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더 어렵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정직한 자기 인식에서만 진정한 학습과 성장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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