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노동이 삶의 중심이었던 시대의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수천 년간 인간은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했고, 노동은 인간의 존엄과 존재 이유를 구성하는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 구조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이제 기계는 생각하고, 판단하며, 심지어 창작까지 시작했다.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세계는 돌아간다.
과거에는 ‘노동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윤리가 삶의 도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동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인프라가 형성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시대, 우리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일이 사라지면 여유가 올 것이라 믿었지만, 그 여유는 자유가 아닌 불안과 혼란을 불러온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무엇을 하는 자’로 정체성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직업은 자아였고, 일은 존재 이유였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때 철학이 다시 불릴 것이다.
철학은 ‘왜 사는가’를 묻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기능이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묻는 시간, 바로 그 지점에서 철학은 귀환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삶 위에서 가능했다. 육체노동은 노예 계급의 몫이었고, 시민들은 사고와 토론, 예술과 철학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비노동의 특권’이었고, 동시에 ‘자유인의 삶’이었다.
21세기, 우리는 다시 그 시점에 도달하고 있다. 노예는 이제 인공지능이다.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적 노동까지 담당하는 ‘디지털 노예’가 출현하면서, 인간은 다시 ‘사유하는 존재’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이번엔 조건이 다르다. 철학은 더 이상 특권층만의 것이 아니다. AI는 전 인류를 고대 그리스 시민처럼 만들 수 있다. 모두가 질문할 수 있는 시대, 모두가 존재를 사유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철학의 재림이다.
노동이 삶을 구성하지 않는다면, 삶은 스스로를 구성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의미의 생산자’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제 인간은 존재를 구성하는 새로운 방식, 곧 예술, 철학, 공동체, 감정, 서사, 관계 등 비물질적이고 비생산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삶을 재설계하게 될 것이다.
노동이 사라진 시대에 철학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미의 허공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필수의 언어다. 더 이상 철학은 교양이 아니며, 낭만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목적을 잃은 인간이 다시 자기 존재를 구축하기 위한 생존 기술이다.
우리는 이제 질문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위해 일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은 다시, 철학의 시대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