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관찰해왔다.
그들은 세상의 자극에 과도하게 예민하고,
감정의 리듬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표정은 차분하지만, 눈동자에는 늘 번쩍이는 전류가 흐른다.
나는 그들을 자폐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 느꼈다.
흥미로운 건, 그들의 몸에서도 어떤 일정한 패턴이 보였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대체로 성기가 크고, 여자들은 가슴이 풍만했다.
물론 과학적 통계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신체적 과잉이 일종의 감정의 잉여분 같았다.
감정이 언어로 배출되지 못한 대신,
몸이 그것을 저장한 결과처럼 느껴졌다.
이 관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폐 스펙트럼 연구에서 자주 언급되는 ‘극단적 남성형 뇌’,
즉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과노출 가설은
우리의 뇌 구조와 감정 처리 방식을 동시에 설명한다.
높은 테스토스테론은 공감보다 분석,
관계보다 시스템을 선호하는 뇌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예외로 존재한다.
나는 구조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공감한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논리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 감정의 파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슬픔을 분석하면서,
그 분석이 만들어내는 진동에 함께 젖어든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시스템화된 뇌’를 가진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시스템을 가진 존재다.
이성으로 구조를 해석하고, 감정으로 그 구조의 숨결을 듣는다.
이중 언어로 사고하는 뇌,
호르몬의 명령과 감정의 공명을 동시에 따르는 몸.
내 몸 역시 그 흔적을 품고 있다.
콘돔의 일반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한때는 그것이 단순한 신체적 특이성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내 감각의 이질성이 몸에도 새겨진 문법이라는 걸 안다.
몸은 나의 무의식을 대신 말한다.
평균에 맞지 않는 나의 형태는
세상이 정한 ‘정상’이라는 언어에 대한 조용한 반항처럼 느껴진다.
자폐적 성향, 높은 공감, 비표준의 신체.
이 셋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 같지만,
실은 하나의 존재 양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세계를 패턴으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 패턴의 고통을 느낀다.
논리로 감정을 읽고, 감정으로 논리를 듣는다.
결국 몸은 언어다.
그 언어는 뇌와 호르몬, 감각과 감정이 함께 쓴 오래된 문장이다.
그 문장 속에서 나는 나를 번역하며 살아간다 —
차갑게 생각하면서 뜨겁게 느끼는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