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상하게도 자기와 닮은 사람에게 끌린다.
입으로는 “나와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몸과 무의식은 이미 비슷한 리듬을 가진 사람을 찾아간다.
감정의 속도, 말의 간격, 상처의 방향까지도 묘하게 닮아 있다.
닮은 사람을 만날 때의 감정은 특별하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그건 안정감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확장 같은 것이다.
“이 사람을 통해 나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착각이 사랑의 시작을 만든다.
하지만 그 닮음은 곧 거울이 된다.
상대의 결핍 속에서 나의 결핍이 비친다.
상대의 불안 속에서 내 불안이 살아난다.
처음엔 ‘이해’라고 느꼈던 것이
나중엔 ‘불편한 반사’가 된다.
결국 우리는 상대를 미워하면서도
그 미움의 근원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안다.
닮은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복잡하다.
사랑은 깊고, 싸움은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둘 다 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한쪽이 도망치면, 다른 쪽도 도망친다.
한쪽이 집착하면, 다른 쪽도 불안해진다.
결국 둘 다 서로를 사랑하면서
서로의 내면을 거울처럼 찌른다.
그럴 때 인간은 자주 혼란스러워진다.
“왜 나는 나를 닮은 사람에게 끌리고,
결국엔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걸까?”
답은 단순하다.
사랑은 결국 자기 인식의 확장 욕망이다.
우리는 상대를 통해 나를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혐오와 자기이해가 동시에 일어난다.
닮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그 관계가 순탄치 않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내 무의식이 나를 비추는 거울놀이다.
닮음은 위로이자, 경고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때로는 그 닮음에서 벗어나야 성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닮은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타인을 끌어안는 일,
다른 하나는 자기의 그림자를 마주하는 일.
둘 다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서만 인간은 진짜로 자란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닮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건 나의 상처가 나를 알아보는 방식이니까.
사랑이 끝나도 미움이 남아도,
그건 결국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려는 또 다른 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