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페스와 사랑의 형이상학

by 신성규

헤르페스가 있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거는 일이었다.

그녀를 품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피부와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상처와 함께 사는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감정이 먼저 나를 덮쳤다.

사랑은 때로 이성보다 더 깊은 질병 같다.

이성은 치료제를 찾으려 하지만, 사랑은 감염되길 원한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에 닿을 때마다, 그곳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체온이,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관계가 흔들릴수록 두려움이 자라났다.

헤르페스도 옮고 그녀와도 끝나면, 내게 남는 것은 헤르페스뿐 아닌가?

그 생각이 나를 서서히 갉아먹었다.


나는 그녀의 헤르페스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말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픔을 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 “아픔을 내 몸 안에 들인다”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의 결합이라 믿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그것이 육체의 계약임을 깨달았다.


신은 왜 헤르페스를 만들었을까?

그것은 단지 바이러스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경계선을 가시화하는 장치 같다.

우리는 사랑이라 말하면서도 늘 조건을 단다.

‘아픈 사람은 싫다’, ‘상처는 무겁다’, ‘나는 감염되기 싫다.’

신은 그런 인간의 본심을 시험하기 위해 헤르페스를 만들어놓은 건 아닐까?


나는 결국 감염되지 않았다.

의학적으로는 ‘깨끗한’ 몸이지만, 마음은 그녀의 흔적으로 오염되었다.

차라리 나도 그녀처럼 헤르페스를 앓았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한 몸 안에서 섞였더라면,

그때의 사랑은 좀 더 진실했을까?

이제 나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

사랑은 지나가도, 흔적은 살아남는다.

그 흔적이 바이러스든, 감정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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