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차이와 사랑의 구조

by 신성규

사랑은 언제나 불균형 위에 서 있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느끼고, 누군가는 너무 적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어긋남 속에서, 인간은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느낀다.

이것이 사랑이 지능의 대칭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다.


지능이 높은 사람에게 사랑은 종종 사유의 공명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상대의 말 속에서 미세한 리듬을 듣고,

단어 하나의 의미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본다.

‘통한다’는 경험은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존재의 깊은 층에서 일어나는 인지적 합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차원의 교류를 경험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들에게, 생각의 깊이가 아니라

감정의 안정감으로 측정된다.


지능이 높은 사람에게 감정은 인식의 파생물이다.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말과 거의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반대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보다

“느껴지고 싶다”는 욕망이 앞선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신보다 훨씬 단순한 상대에게서

깊은 평화를 느낀다.

복잡한 언어 대신 따뜻한 체온이,

논리 대신 즉각적인 공감이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인지적 역체감이라 부를 수 있다.

지능이 높은 사람은 사고의 밀도 차이에서 피로를 느끼지만,

지능이 낮은 사람은 그 차이를 불안으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상대의 복잡함 속에서

‘의존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높은 지능이 보호자로 변하고,

낮은 지능은 감정의 수용자로 변한다.

이 관계는 논리적으로 불균형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놀라울 만큼 견고하다.

인간의 사랑은 인지적 합리성보다 정서적 항상성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능이 높은 사람은 사랑하기 더 어려운 존재일까?

어쩌면 그렇다.

그들은 상대의 무의식적 반응까지 분석하고,

언어의 결을 해석하며,

사랑의 순간조차 인지적 평가를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넘어

‘자신을 허락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안정을 얻는다.

사랑은 결국, 이해의 언어가 아니라 허락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속도로 생각하고, 다른 높이에서 세상을 본다.

그럼에도 사랑이 지속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은 이해받을 때보다, 용납받을 때 더 깊이 안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어리석고,

그래서 사랑은 지능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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