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집안이야기

by 신성규

나는 종종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 사람들 속에 어쩐지 복종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고 느낀다. 단순히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살아남기 위해 몸과 마음이 학습한 역사적 선택의 결과이다.


우리 집안의 이야기를 꺼내면, 그 그림자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역 지주였다. “길을 안내하라”고 요구했을 때, 그는 단순히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총부리가 겨눠진 자리에서, 그는 자기 신념과 권위를 지켰다. 그 주변에서 사소하게 움직이던 하인이 그의 거처를 밀고하고 대전형무소로 끌려가 시신도 찾지 못했다.


그 이후 할아버지는 군인 시절 울분을 이기지못하고 하인을 죽이겠다는 결심으로 탈영했다. 위험은 현실이었다. 권력에 저항하면 죽음이 기다리는 현실이었다.


박정희에게 투표하라는 압력에도, 할아버지는 군인 시절 공개적으로 따르지 않았고, 전역 후에도 경찰의 감시가 뒤따랐다. 그 한 사람의 양심과 저항은, 사회적 위험과 맞닿아 있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집안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권위와 맞서야 할 때 겪는 현실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한국인들이 흔히 ‘순응적’이라 평가받는 것도, 어쩌면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반복되는 권위와 억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응은 본능이 되었고, 복종은 생존 전략이 되었다. 권력에 맞서려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죽음과 생존 사이의 계산이 된다. 그 속에서 개인의 내면은 복잡하게 흔들리고, 순응과 저항 사이를 오가며 성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저항의 흔적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집안 사례처럼, 극단적 위험을 무릅쓰고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숨겨져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인간이 권위 앞에서 느낀 양심과 자유의 흔적이며, 사회적 구조의 경계를 조금씩 흔드는 힘이다.


나는 이 역사를 바라보면서, 복종과 저항이 단순히 성격적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은 역사적 현실과 사회적 구조가 인간의 행동을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순응이 생존을 보장했던 시대가 있었고, 저항은 생존을 위태롭게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 흔적은 오늘날의 사회적 심리 속에서도 미묘하게 살아남아, 한국인의 사고와 문화에 내재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순응’과 ‘저항’은 개인의 기질인가, 아니면 시대와 역사 속에서 선택한 전략인가? 권위 앞에서 몸을 낮추고 생존을 선택하는 것과, 맞서서 자유를 지키는 것 사이, 우리는 어느 지점을 살아가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을, 얼마나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안고 산다. 그리고 우리 집안의 저항과 복종의 흔적을 바라보며, 한국 사회가 가진 깊은 역사적 그림자를 이해하려 한다. 동시에 그 그림자 속에서도, 인간이 권위에 맞서며 지켜낸 자유와 양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그것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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